내 가방
임보
내가 즐겨 들고 다니는 검정 가죽가방은
닳고 헐어서 볼품없는 고물이 되었지만
그래도 꽤 이름 있는 회사의 명품이다
정처 없이 떠돌다 대학에 자리 잡자
나를 좋아한 선배가 마련해 준 것인데
삼십 년 나와 함께 한 소중한 반려품이다
친구들은 그 가방 이젠 그만 들라지만
아쉽게 일찍 떠난 그 선배가 마음 걸리고
어쩐지 조강지처 같아 버리기가 쉽지 않다
무거운 책 담고 다니기 얼마나 힘겨웠을까
미완성 시고들 넣고 얼마나 속 앓았을까
돋보기, 만년필이며 상비약도 품고 다녔지…
가끔은 팬들이 보낸 정다운 편지며
아내가 모르는 봉투도 더러 숨어 있었고
어떤 땐 아기자기한 선물들도 담겨 있었지
사랑이란 사람 사이서만 드는 게 아니라
하찮은 물건과도 오래 함께 지내다 보면
그처럼 떨칠 수 없는 정분이 생기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