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내 가방/ 임보

운수재 2015. 6. 11. 08:23

 

내 가방

                                            임보

 

내가 즐겨 들고 다니는 검정 가죽가방은

닳고 헐어서 볼품없는 고물이 되었지만

그래도 꽤 이름 있는 회사의 명품이다

 

정처 없이 떠돌다 대학에 자리 잡자

나를 좋아한 선배가 마련해 준 것인데

삼십 년 나와 함께 한 소중한 반려품이다

 

친구들은 그 가방 이젠 그만 들라지만

아쉽게 일찍 떠난 그 선배가 마음 걸리고

어쩐지 조강지처 같아 버리기가 쉽지 않다

 

무거운 책 담고 다니기 얼마나 힘겨웠을까

미완성 시고들 넣고 얼마나 속 앓았을까

돋보기, 만년필이며 상비약도 품고 다녔지…

 

가끔은 팬들이 보낸 정다운 편지며

아내가 모르는 봉투도 더러 숨어 있었고

어떤 땐 아기자기한 선물들도 담겨 있었지

 

사랑이란 사람 사이서만 드는 게 아니라

하찮은 물건과도 오래 함께 지내다 보면

그처럼 떨칠 수 없는 정분이 생기나 보다

 

 

 

'신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양조/ 임보  (0) 2015.06.18
여보! / 임보  (0) 2015.06.13
신발에 대한 생각/ 임보  (0) 2015.06.03
술타령/ 임보  (0) 2015.06.01
바람 타령/ 임보  (0) 2015.05.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