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스크랩] 귤의 껍질을 까다가 / 임보

운수재 2016. 6. 11. 12:05


 

귤의 껍질을 까다가

                                               임보 

 

귤처럼 양순한 과일은 없다

껍질을 벗겨 보시라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은

칼을 대지 않으면 속을 드러내지 않지만

귤은 무딘 손만으로도 쉽게 옷을 벗는다

 

사람들도 참,

그처럼 순종적인 귤에게서 씨를 제거하다니

씨를 잃은 귤을 씹으며 미안한 생각에 빠진다

마치 임금도 안 주고 노동력을 빼앗는

날강도 같은 사람들아,

과일이 열매를 맺는 건 자손을 번식하려 함인데

씨는 못 갖게 하고 달콤한 육즙만 만들게 하다니

인간의 교활이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사람들아,

향기로운 과일로 그대들의 입맛을 돋우었으면

그들의 씨를 잘 간수했다 땅에 심을 일이다

나무들이 그처럼 맛있는 열매를 빚는 것은

그들의 씨를 옮겨 줄 짐승들에 대한 보답이거늘

옮겨 주기는커녕

먹기에 귀찮다고 그 씨들을 못 만들게 한다고?

 

만일

불임의 수술을 받은 과일나무들이

상제 님께 연판장을 만들어 상소를 올린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곤장을 면치 못하리라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운수재 원글보기
메모 :

'신작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학림다방에서 / 임보  (0) 2016.07.11
[스크랩] 매실주/ 임보  (0) 2016.07.05
[스크랩] 몸값 / 임보  (0) 2016.06.04
[스크랩] 백모란 / 임보  (0) 2016.06.02
[스크랩] 새벽 2시쯤 깨어  (0) 2016.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