귤의 껍질을 까다가
임보
귤처럼 양순한 과일은 없다
껍질을 벗겨 보시라
사과나 배 같은 과일은
칼을 대지 않으면 속을 드러내지 않지만
귤은 무딘 손만으로도 쉽게 옷을 벗는다
사람들도 참,
그처럼 순종적인 귤에게서 씨를 제거하다니
씨를 잃은 귤을 씹으며 미안한 생각에 빠진다
마치 임금도 안 주고 노동력을 빼앗는
날강도 같은 사람들아,
과일이 열매를 맺는 건 자손을 번식하려 함인데
씨는 못 갖게 하고 달콤한 육즙만 만들게 하다니
인간의 교활이 얼마나 가증스러운가?
사람들아,
향기로운 과일로 그대들의 입맛을 돋우었으면
그들의 씨를 잘 간수했다 땅에 심을 일이다
나무들이 그처럼 맛있는 열매를 빚는 것은
그들의 씨를 옮겨 줄 짐승들에 대한 보답이거늘
옮겨 주기는커녕
먹기에 귀찮다고 그 씨들을 못 만들게 한다고?
만일
불임의 수술을 받은 과일나무들이
상제 님께 연판장을 만들어 상소를 올린다면
아마도 사람들은 곤장을 면치 못하리라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운수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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