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스크랩] 매실주/ 임보

운수재 2016. 7. 5. 05:32




매실주

                                                임보 

 

운수재(韻壽齋)엔 세 종류의 매실주가 있다

하나는 뜰의 매실을 따서 손수 담근 운수주,

또 하나는 아흔일곱의 장모님이 광주에서 보내온 무등주(無等酒),

또 하나는 세란헌(洗蘭軒)*의 우금실(雨琴室)* 주인이 담근 세란주다

 

운수재의 지하엔 큰 독이 여럿 있다

독의 30%쯤 매실을 넣고 35°의 소주로 나머지를 채운다

반 년쯤 두면 노랗게 우러나는데

그때 매실을 건져내고 숙성시킨 게 운수주다

 

무등주는 좀 쌉스름하다

늙은 사위의 건강을 염려해서

25°의 연한 소주에 매실을 많이 넣었기 때문!

입술을 뗄 때마다 너무 과하게 들지 마시게!” 하는

장모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금실 주인은 요새 탁주로 돌리면서

손수 빚은 매실주 병을 내게 맡겼는데

35°의 술에 50%의 매실이 들어있어

운수재의 것보다는 좀 짙고 시다

 

나는 매일 저녁 반주를 하는데

첫 잔은 무등주,

둘째 잔은 세란주,

그리고 운수주로 마지막 입가심을 한다

 

금년에도 운수재의 매실나무가

주인의 뜻을 미리 짐작하고

이른 봄부터 꿀벌들을 열심히 불러 모으더니

한 일년쯤 버틸 수 있는 내 양식을

넉넉히 마련해 주셨다

 

 

* 세란헌 : 홍해리 시인의 당호.

* 우금실 : 홍해리 시인의 별실 서재가 양철지붕이어서 비가 오면 요란하다. 그래서 내가 붙인 이름임.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운수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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