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실주
임보
운수재(韻壽齋)엔 세 종류의 매실주가 있다
하나는 뜰의 매실을 따서 손수 담근 운수주,
또 하나는 아흔일곱의 장모님이 광주에서 보내온 무등주(無等酒),
또 하나는 세란헌(洗蘭軒)*의 우금실(雨琴室)* 주인이 담근 세란주다
운수재의 지하엔 큰 독이 여럿 있다
독의 30%쯤 매실을 넣고 35°의 소주로 나머지를 채운다
반 년쯤 두면 노랗게 우러나는데
그때 매실을 건져내고 숙성시킨 게 운수주다
무등주는 좀 쌉스름하다
늙은 사위의 건강을 염려해서
25°의 연한 소주에 매실을 많이 넣었기 때문!
입술을 뗄 때마다 “너무 과하게 들지 마시게!” 하는
장모님의 목소리를 듣는다
우금실 주인은 요새 탁주로 돌리면서
손수 빚은 매실주 병을 내게 맡겼는데
35°의 술에 50%의 매실이 들어있어
운수재의 것보다는 좀 짙고 시다
나는 매일 저녁 반주를 하는데
첫 잔은 무등주,
둘째 잔은 세란주,
그리고 운수주로 마지막 입가심을 한다
금년에도 운수재의 매실나무가
주인의 뜻을 미리 짐작하고
이른 봄부터 꿀벌들을 열심히 불러 모으더니
한 일년쯤 버틸 수 있는 내 양식을
넉넉히 마련해 주셨다
* 세란헌 : 홍해리 시인의 당호.
* 우금실 : 홍해리 시인의 별실 서재가 양철지붕이어서 비가 오면 요란하다. 그래서 내가 붙인 이름임.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운수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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