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經)
임보
사람들아,
네 이웃을 미워하지 말라
세상의 모든 경전을 줄여 쓰면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구나
인(仁)이며
박애(博愛)며
자비(慈悲)며
다 그 뿌리는 하나
이는 세상의 모든 생명들이 더불어 살 길이다
신은 우리에게 투쟁을 명하고
성인은 우리에게 화평을 가르친다
사람들아,
세상의 모든 경전들을 다시 고쳐 쓴다 해도
그렇게 말할 수밖에 없구나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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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임보의 잠언시집 [산상문답]에서
감상)
임보 시인의 "경(經)"을 읽으면서 "사랑"이 무엇인지 되새겨 보았다.
사랑의 속성은 "무조건"이다. 조건에 의해 더 사랑하고 덜 사랑하는 것이 아닌, 일방적으로 조건 없이 주는 사랑, 마치 부모가 자식에게 아낌없이 주는 사랑 같은 것이다.
그런데 타인 누구에게나 그런 사랑을 줄 수 있느냐,
이 질문엔 매우 회의적이다. 그래서 나는 "위선" 이란 단어를 심중에 두고 시편을 감상했다.
사랑할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지사, 사랑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사랑이라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1연 2행 "네 이웃을 미워하지 말라."라고 시작하지 않았을 것이고 마지막 연에서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라고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면, 고린도전서 13장 13절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중에 사랑이 제일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왜 성경은 그렇게 말하고 있을까?
굳이 성경이 아닌 불경에서도 크게 보면 그 뜻일 것이고 큰스님들도 중생들에게 그렇게 설파했으리라.
저녁 식사를 하면서 티브이를 보는데 "위선적인 신앙인보다 무신론자가 낫다."라는 교황의 말씀이 뉴스로 전해졌다. 물론 무신론자라고 해서 위선적이지 않은 사람이 전혀 없지는 않을 것이고 교황 말씀 또한 그런 의도로 말하진 않았을 것이다. 그만큼 신앙인으로서 진정한 믿음, 즉 화평을 추구하고 평안함이 넘치는 세상이 되었으면좋겠다는 뜻으로 말한 것임이 분명하다.
위선 僞善은 사전적으로 겉으로만 착한 체함, 또는 그런 짓이나 일, 이라고 나온다. 그렇다면 이중적 잣대를 가진 성격 또는 성향일 수가 있는데 사실은 그다지 사랑하지 않지만, 사랑하는 척 행동하는 것이라고 간략히 정리해 볼 수가 있겠다. 나는 그것이 일종의 자기 계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타인에게 호감의 모습으로 각인 되길 바라는 마음, 사람이라면 누구나 있을 법한 처신이지만 문제는 도에 지나친 자기 과시적인 행동이 사랑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미움을 초래하는 시발점이 위선이라는 생각이 폐부를 찌르고 타인에 대한 나의 사랑도 위선이었음을.....
미운데 어찌 사랑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래서 시인은 먼저 미워하지 말라고 말했다. 미워하는 마음을 상쇄하는 것은 용서, 그래서 4연과 5연 사이 행간에서 나는 용서를 발견하고 읽는다. 주는 것 없이 미운 사람이나, 감정대립으로 밉게 생각되는사람 한둘 없는 사람이 이디 있겠나. 미운 마음을 두고 아닌 척 웃으며 반가워했던 사실이 부끄러워진다. 미워하는 동안 괴로웠던 마음을 미워하는 사람을 용서함으로써 마음이 가벼워지는 색다른 경험, 나는 이 시를 읽으면서 용서를 통해 비로소 사랑할 수 있는 용기가 생기고 이웃을 내 몸처럼 사랑할 수 있다는 진리를 오롯이 느끼고 있다. (전선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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