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의 산문들/수필

운정의 금강산도/ 임보

운수재 2019. 6. 10. 11:31



운정의 금강산도

임 보

 

운수재도 몇 개의 그림을 소장하고 있었다. 그런데 옛날 직장 동료였던 이만익(李滿益, 1938~2012), 하동철(河東哲, 1942~2006) 화백의 작품들은 출가한 아이들에게 이미 나누어 주었고, 아직 내 곁에 남아있는 것은 <도원홍의도(桃源紅衣圖)>와 두 폭의 <금강산도>뿐이다.

<도원홍의도>는 운영실(雲影室) 주인이 나를 위해 특별히 그려준 그림이다.복숭아꽃이 흐드러진 계곡의 중앙 반석 위에 붉은 옷을 걸친 한 인물이 좌선을 하고 있는 정황인데 반절 크기의 동양화다.

내가 오늘 자랑하고자 하는 작품은 운수재의 내실에 걸려 있는 운정(芸亭)<금강산도>. ‘금강연우(金剛煙雨)’금강우후(金剛雨後)’라는 화제를 달고 있는 두 폭(31×76cm)의 산수화인데 삼베 위에 금강산을 그렸다. 운정은 정완섭(鄭完燮, 1922~1978) 화가의 아호다. 호를 뒤에 云丁이라 간편하게 바꾸어 썼는데 芸亭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아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운정은 배재중학을 졸업하고 17세의 어린 나이에 이당(以堂) 김은호(金殷鎬) 문하에 들어갔다. 운보 김기창과 사귀게 되고 이듬해부터 여러 차례 선전(鮮展)에 입선하는 재능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광복 후 동란을 겪고 난 뒤부터는 국전(國展)이 열리긴 했지만 출품하지 않았다. 국전뿐만 아니라 어떤 미술단체에도 관여하지 않고 혼자서 조용히 작품만 했다. 순수성을 잃어버린 미술단체들의 파벌주의를 못마땅하게 여겼던 것 같다. 개인전도 평생에 겨우 두 번에 그쳤다. 1976년에 산수화전을 한 번, 그리고 그 이듬해에 선화전(扇畵展)을 한 번 했을 뿐이다. 인사동에 조그마한 치류산관화숙(峙流山館畵塾)을 열고 제자들을 가르치며 조용히 소일하고 지냈다. 시류에 영합하기를 싫어한 맑은 선비였다.

 

내가 운정 선생을 알게 된 것은 1975년 무렵이다. 인사동 J학원에 나가고 있던 내 친구 도곡(道谷)이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엘 찾아와서 나를 꾀었다. 학교보다는 학원이 자유스러워 좋다는 것이다. 출퇴근 시간도 없을 뿐만 아니라 급료도 학교보다 훨씬 낫다지 않는가? 그래서 나도 솔깃하여 인사동의 그 학원으로 직장을 옮겼다.

도곡은 서예를 하는 사람이었는데 강의가 없는 빈 시간에는 학원 옆에 있는 한 화실에 가서 문인화를 익힌다고 했다. 어느 날 나도 구경 삼아 따라가 보기로 했다. 낡은 목조건물 2층에 있는 작은 화실이었다. 바로 그곳이 운정이 운영하고 있는 치류산관화숙이었던 것이다. 시원한 이마에 짙은 뿔테 안경을 낀 50대의 운정은 말수가 별로 없는 온화한 분이었다. 그날로부터 나는 바로 치류산관 문하생이 되었다.

그러한 연고로 나는 한 2년 동안 문인화를 익히면서 팔대산인(八大山人)이며 석도(石濤) 그리고 오창석(吳昌碩), 제백석(齊白石) 등의 중국화가들의 이름도 귀동냥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와 운정과의 만남은 길지 못했다. 19789월 뇌일혈로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56세의 아쉬운 나이였다. 19791주기를 맞아 김기창 등 그의 지인들이 추모화집 云丁 鄭完燮(峙流山館畵集)을 간행했다. 1960년대 후반부터의 작품 122점이 수록되어 있다.

 

운정이 떠난 후 그분이 그려 주신 체본들을 배접해서 묶었더니 두 권이나 된다. 하지만 그분의 작품 한 점 간직하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크게 남았다. 그러던 중 어느날 인사동 고물상 곁을 지나다가 길가의 허름한 상자 안에 담긴 두루마리 그림들을 보게 되었다. 어떤 그림들을 저렇게 허술하게 다루는 걸까 하고 걸음을 멈추고 뒤적여 보았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허접더미 속에 운정의 그림이 도사리고 있는 게 아닌가. 삼베에 그린 금강산도 두 폭이 돌돌 말린 채 끼어 있었다. 병풍으로 만든 것인데 나머지는 떨어져 나가고 두 쪽만 남은 것인가 싶기도 했다.

나는 떠나간 스승을 다시 뵙는 듯 반가웠다. 설레는 마음으로 금강산도를 품고 돌아와 잘 표구해서 지금까지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금강연우(金剛煙雨)>는 안개처럼 가는 비가 만학천봉의 계곡을 가볍게 감싸고 도는 정경이다. 하단 우측에 두 그루의 낙락장송이 서 있고 그 밑을 옥류가 감돌아 흐르고 있다. 좌측 깊숙한 송림 속엔 사찰의 지붕이 보인다. 기암의 산봉우리가 중앙에 솟구쳐 있는 게 장관이다.

<금강우후(金剛雨後)>는 밑에 작은 돛배가 떠 있는 것으로 보아 해금강을 그린 것으로 보인다. 물가 언덕에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어 있고 그 가운데 3충 사원이 의연히 자리잡았다.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산봉우리들이 층층이 솟았으며, 청청한 소나무들이 석산의 중간중간에 곧게 돋아 있다. 비가 갠 뒤의 맑은 기운이 화폭에 가득하다.

 

벽에 걸린 <금강산도>를 보며 아쉽게 일찍 떠나가신 운정을 다시 생각한다. 온유했지만 강직함을 잃지 않았던 외유내강의 선비, 결코 시류에 야합하지 않고 의연히 작품에만 몰두했던 개결의 예술인을 회고한다. 그리고 이 아침 운정과 그의 그림을 기리는 마음으로 몇 마디 단가를 지어 읊조리며 아쉬움을 달래 본다.

 

석산이 품은 정기 선비의 기상이요

옥류에 서린 청정 은자의 성품일세

청송의 푸른 기개에 님의 뜻이 넘쳐라

 

한 자루 붓으로 치류산관 맑게 세워

어지러운 한 세상 곧고 굳게 사시며

금강에 버금갈 만한 수작을 낳았어라

 

 

------(에세이21, 2019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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