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窮)과 공(工) / 임보
시궁이후공(詩窮而後工)이라는 말이 있다.
시는 곤궁한 뒤라야 공교해진다는 뜻이다.
다시 말하면 시인이 곤궁한 처지에 놓여야 그가 만든 시는 더욱 정교한 경지에 이른다는 것이다.
이 말은 구양수로부터 비롯된 것이라고 하는데,
공감을 자아냈든지 천년을 내려오면서 시인묵객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고 있다.
왜 처지가 어려워야 좋은 시를 낳는단 말인가?
옛날 서백(西伯)은 유리(羑里)에 구금되어 『주역』을 부연하였고, 공자는 진채(陳蔡)에서 곤액을 당하여 『춘추』를 지었다. 굴원은 쫓겨나 『이소(離騷)』를 지었고, 좌구(左丘)는 실명한 뒤 『국어(國語』를 남겼다. 손자(孫子)는 다리가 잘린 뒤에 병법을 논하였고, 여불위(呂不韋)는 촉(蜀) 땅으로 옮긴 뒤 『여람(呂覽)』이 세상에 전한다. 한비자(韓非子)는 진(秦)나라에 갇혀서 「세난(說難)」과 「고분(孤憤)」을 지었다. 『시경』삼백 편은 대개 성현이 발분하여 지은 바다. 이 분들은 모두 뜻이 맺힌 바가 있으나 이를 펼쳐 통함을 얻지 못한 까닭에 지나간 일을 서술하여 장차 올 것을 생각한 것이다.
사마천의 「태사공자서(太史公自序)」에 있는 글이다.
무제의 격노를 사 궁형에 처해진 사마천은 발분(發憤)하여 『사기(史記)』라는 명저를 저술해냈다.
그리고 그 책의 서문에 위와 같이 기록한 것이다.
역사적으로 훌륭한 저술이나 시문(詩文)은 작자가 곤궁한 상태에 놓여 있을 때 생산되었다는 것이다.
즉 발분지심이 불후의 저작들을 만들어 냈다는 주장이다. 맞는 말이다.
『목민심서』를 비롯한 다산(茶山)의 명저들이 다 적거(謫居)의 신고(辛苦) 속에서 집필되었고,
「세한도(歲寒圖)」를 위시한 추사(秋史)의 명품들이 유배(流配)의 곤고(困苦) 속에서 이루어진 사실만 보아도 알 수 있다.
그런데 곤궁이 명저를 만들어낸다는 이 명제는 하나의 전제(前提) 아래서만 유효하다.
즉 누구나 곤궁에 처한다고 해서 명저를 생산해 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역사적으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물들이 위리안치(圍籬安置)의 곤욕을 치렀건만
다산과 추사처럼 발분하여 명저를 남긴 사람들은 흔치 않다.
그러니 사람됨의 문제가 전제되지 않을 수 없다.
첫째는 곤고를 발분으로 이겨낼 수 있는 정신력의 소유자여야 하고,
다음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구상화할 수 있는 표현력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사마천이 거론한 앞의 인물들은 다 그러한 능력의 소유자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 정신력과 표현력의 소유자라 할지라도
영달의 자리에 있으면서 환락에 젖어 살게 된다면
자신이 지닌 능력을 충분히 발휘치 못할 것이 뻔하다.
그러니까 이런 경우에 ‘詩窮而後工’은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궁’이 발분의 요인이 되는 것은 어디 저술이나 시에만 국한된 일이겠는가?
이 세상의 모든 분야가 다 그렇다.
어느 분야에서나 성공한 사람들은 대개 궁핍을 딛고 일어선 사람들이다.
굴지의 정치가나 사업가는 말할 것도 없고,
유명한 예술가나 운동선수도 다 분발인들이라 할 수 있다.
그들의 과거가 곤궁을 모르는 탄탄대로였다면 아마 오늘의 그들은 평범한 인물에 지나지 않았을 지도 모른다.
역경은 그들로 하여금 각고의 노력을 하도록 분발심을 불어넣었던 것이다.
어둠을 탓하지 말라/ 모든 빛나는 것들은/
어둠의 어깨를 짚고/ 비로소 일어선다/
어둠이 깊을수록/ 별들이 더 반짝이듯/ 그렇게/
한 시대의 별들도/ 어둠의 수렁에서 솟아오른다. ―졸시「별」전문
어둠이 깊을수록 별빛이 더 빛난다는 이야기는 곧 궁이 교를 만들어낸다는 말과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의 우리 문단은 얼마나 많은 명저의 보고(寶庫)를 자산으로 지니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 동안 우리 민족이 겪은 역사적인 시련으로 본다면 적잖은 명작들이 쏟아져 나올 법도 한데 사정이 어떠한지 쉽게 판단키 어렵다.
그것이 절대적인 평가라고는 할 수 없지만 아직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얻은 작가도 없고,
온 국민이 기릴만한 훌륭한 작품의 출현도 아직은 있는 것 같지 않다.
하기야 좋은 작품들은 있지만 미처 인정을 받지 못해 초야에 묻혀 있는 경우도 생각할 수 없는 바는 아니다.
작품의 빈곤을 느끼는 것은 산문에 있어서보다도 시의 경우가 더욱 절실한 것 같다.
어느 때보다도 많은 시인들이 등단하여 매일 방대한 분량의 작품들을 생산해내고는 있지만
작자의 고혈(膏血)로 이루어진 회심작들은 별로 눈에 띄는 것 같지 않다.
오늘의 시인들은 궁함을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일까?
비록 궁하지만 발분지정이 약해서 그런 것인가?
시는 사람을 궁하게 한다[詩能窮人]는 말도 있는데
궁이 두려워 시에 적극적으로 매달리지 못해서 그런 것인가?
내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아도 너무 나태한 것 같다.
사물에 부딪치는 치열한 열정도 부족하고 지구력도 약하다.
도대체 발분지정이 없다.
이런 정신력을 가지고 도대체 무엇을 이루겠다는 것인지 참 답답한 노릇이다.
그러니 시랍시고 써 놓은 글이 기백을 잃은 타령에 지나지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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