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아무(啞兒舞) / 임보
세란헌주인(洗蘭軒主人)이 <觀香會(관향회)>를 벌인다는 전갈이다. 12월
그믐께 푸른 눈을 밟고 우이동 산록에 자리한 그의 집을 찾았더니, 사랑에는 이미 몇 사람의 소인묵객(騷人墨客)들이 차를 마시면서
한 그루의 난초 향기를 즐기고 있다. 일경구화(一莖九華)의 보세(報歲)다. 분청 백자분을 뚫고 솟대처럼 솟아오른 하나의
꽃대에 아홉 개의 꽃잎이 기러기 날개 시늉을 하고 떠 있다. 주인이 10년을 공들여 피워낸 꽃이다. 그놈들이 쏟아낸 그윽한
향기가 방안에 가득하여 문을 여닫을 때마다 출렁거리며 옷깃에 파고든다. 이 향기를 무엇이라 이를 수 있을까. 빛깔로
그린다면 엷은 비취라고나 할까. 소리로 친다면 해금의 낮은 가락일레라. 열대여섯 살 어린 신방의 냄새가 아마 이런 것이려니 하고
그놈 가까이에 코를 자주 갖다댔더니…… 내가 안 되어 보였던가. 떠나올 때 주인이 아예 그놈을 내 품에 덥석 안겨
준다.
포우거사(抱牛居士)가 <醉律宴(취율연)>을 마련한다는 소식이다. 백운동(白雲洞) 계곡의 맑은 물가에 자리를
폈는데 송주(松酒)에 더덕 안주다. 소리의 주인공은 설매(雪梅)라는 동기(童妓)인데 가야금 가락에 적벽부(赤壁賦)를 싣는
품이 제법이다. 그 소리 요요히 산천에 스며드니 숲 속의 멧새들도 기웃거리며 깃을 여민다. 세상에 저런 계집을 어디에 감추어 두고
길을 들였단 말인가. 내 앞엔 아예 산천은 없고 세상은 온통 소리만 가득하다. 흥에 겨워 시(詩)를 읊조리니 고년이 제법
궁우(宮羽)를 얹어 내 뒤를 좇는다. 포우(抱牛)가 눈치를 채고 내 가까이 오더니 귀에다 대고 소곤거린다. 마음에 들면 자네가
머리를 얹어 주게나. 내 열일곱 해를 길렀건만 역시 나보다는 자네가 잘 어울리는 짝인가 보이. 이 무슨 공덕의 날벼락이란
말인가.
고불은옹(古佛隱翁)이 <樂樂亭(요요정)>에서 부른다. 정자는 남해(南海) 십이매도(十二梅島)의 군봉들이
물 위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청학도(靑鶴島)의 자하단(紫霞壇)에 자리하고 있다. 천 길 석벽의 위―학(鶴)의 정수리 형국이니
말하자면 <樂樂亭>은 단정학(丹頂鶴)의 붉은 깃인 셈이다. 고불(古佛)이 평생 동안 3천여 개의 섬들을 섭렵하고
돌아다니다 골라잡은 승경지다. 물이 너무 많지 않아 허함이 없고 산이 너무 많지 않아 울함도 없다. 하늘과 산과 물이 이와
잇몸처럼 잘 어울려 금슬을 이루고 있는 별유천지(別有天地)다. 세속에 절은 초동급부(樵童汲婦)라도 이곳에 갖다 앉혀 놓으면 금방
신선의 팔촌쯤은 됨직도 하다. 지초(芝草)로 빚은 붉은 홍주(紅酒)를 조랑박만한 전복의 껍질에 딸아 마시면서 물 위에 떠 있는 뭇
섬들을 내려다보는 기분이란 가히 천하일품(天下一品)이다. 노옹(老翁)이 경(景)에 푹 빠져 있는 내 꼴을 보고는 껄껄 웃으면서
'그렇게 마음에 들어 하니 반갑네. 나는 그동안 볼 만큼 보아 왔으니 오늘부터는 이 정자의 이름을 자네의 것으로 매달게'
한다. 이 고약한 노인, 산해(山海)를 들어 온통 나를 후려칠 셈인 모양이다.
내 몸뚱이는 온통 욕심의 덩어리다.
말로는 초연한 척 능청을 떨지만 내 마음은 이목구비의 끈에 매여 꼼짝을 하지 못한다. 빛이 고우면 그 빛에 끌리고 소리가 맑으면
그 소리에 기운다. 혀는 맛에 길들어 있고 코는 냄새에 사로잡혀 있다. 트인 내 친구들은 이런 내 몰골을 알고 그들이 아끼는
것들을 내게 던져 나를 가르친다. 오늘은 내 운수재(韻壽齋)에서 <啞兒舞(아아무)>라는 한바탕 춤판을 벌여 그동안
그들에게서 빚진 것들을 다 되돌려 주고 싶은데 내 뜻대로 잘 따라 줄는지… 아니면 더 무거운 짐들을 지고 와 내 곁에 부려
놓고 도망쳐 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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