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광천(狂泉) / 임보
송(宋)의 원찬(袁粲)이란 자가 지은 『묘덕선생전(妙德先生傳)』에
'광천(狂泉)'이라는 묘한 샘물 이야기가 나온다. 그 샘물을 마시는 자는 모두 미치광이가 되는데 나라의 백성들이 그
광천수를 마시고 다 제 정신을 잃어버린 세상이 되었다. 다만 궁중의 임금만 그 물을 아직 마시지 않아 사람의 본성을 지키고 있자
미친 문무백관들이 그 임금을 보고 큰 병이 들었다고 침을 놓기도 하고 뜸을 뜨기도 해서 견디다 못한 임금 또한 드디어 광천수를
마시고 함께 미치고 말았다는 얘기다.
며칠 동안 지존파(至尊派)*의 기사로 신문마다 난리들이다. 사람을 잡아먹다니 그런
미친놈들이 세상에 어디 있단 말인가. 만나는 사람들마다 치를 떨며 말세(末世)라고 한탄들을 한다. 그런데 도대체 지금 세상에 사람
안 잡아먹고 사는 정신 멀쩡한 놈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떤 놈은 돈에 미치고 어떤 놈은 정치에 미치고 어떤 놈은
술에 미치고 어떤 놈은 색에 미쳐서,
새끼는 에미를 잡아먹고 군주는 백성을 잡아먹고 제자는 스승을 잡아먹고
장군은 졸개를 잡아먹고 동생은 형을 여편네는 남편네를 있는 놈은 없는 놈을 이사(李四)는 장삼(張三)을 잡아들
먹는데, 마치 사자가 사슴을 매가 꿩을 고양이가 쥐를 채듯 쥐도 새도 모르게 먹는 놈들은― 아니, 많이 잡아먹는 놈일수록
승승장구 높은 자리에서 떵떵거리며 잘 사는 세상이거늘, 이 땅에 미치지 않고 사는 놈이 누구란 말인가. 나도 술독에나 빠져
허우적거릴 수밖에
* 지존파: 1994년 엽기적인 강도 살인을 자행한
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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