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 한 판
고 영 민
대낮, 골방에 처박혀 시를 쓰다가
문 밖 확성기 소리를 엿듣는다
계란…(짧은 침묵)
계란 한 판…(긴 침묵)
계란 한 판이, 삼처너언계란…(침묵)…계란 한 판
이게 전부인데,
여백의 미가 장난이 아니다
계란, 한 번 치고
침묵하는 동안 듣는 이에게
쫑긋, 귀를 세우게 한다
다시 계란 한 판, 또 침묵
아주 무뚝뚝하게 계란 한 판이 삼천 원
이라 말하자마자 동시에
계란, 하고 친다
듣고 있으니 내공이 만만치 않다
귀를 잡아당긴다
저 소리, 마르고 닳도록 외치다
인이 박여 생긴 생계의 운율
계란 한 판의 리듬
쓰던 시를 내려놓고
덜컥, 삼천 원을 들고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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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공은 깊은 사찰의 선방이나 상아탑의 연구실에서만 가능한 것이 아닌 모양이다.
행상인의 목소리도 수십 년 닦이다 보면 사람의 귀를 잡는 힘을 얻는가 보다.
달걀장수의 멋들어진 '생계의 운율'도 기발하지만
그런 소재로 시를 만들어 낸 시인의 독공도 참 가관이다.
운수재
출처 : 자연과 시의 이웃들
글쓴이 : 운수재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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