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 감상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운수재 2007. 5. 5. 04:09

[명시감상]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  임보

 

김기림(金起林, 1908~?)은 1950년 납북되기 전까지『太陽의 風俗』(學藝社, 1939), 『氣象圖』(彰文社, 1936), 『바다와 나비』(신문화연구소, 1946), 『새노래』(雅文閣, 1948) 등의 시집을 간행했다. 김학동 편『김기림전집(시)』(심설당, 1988)에는 위의 시집들 외에 누락된 57편의 작품이 발굴 수록되어 있다.

1930년대 초반 모더니즘 시론과 더불어 화려하게 작품 활동을 펼쳤던 김기림은 납북으로 말미암은 평가의 공백 기간도 있기는 했지만, 오늘에 와서도 별로 크게 주목의 대상이 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렇게 된 연유 중의 하나는 그의 시에는 백석이나 정지용의 작품들에서 느낄 수 있는 ‘온유(溫柔)’의 맛이 덜한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말하자면 그의 시는 생경(生硬)하다. 낭만적인 서정을 거부하고 문명과 지성을 지향한 새로운 경향의 작품을 시도하다 보니 그랬을 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의 세 번째 시집인 『바다와 나비』에 이르게 되면 서정성 회복의 징후가 보인다. 이 시집의 표제시인 「바다와 나비」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지적 이미지를 무기로 삼았던 그도 시의 바탕이 서정임을 끝까지 부인하기는 어려웠던 모양이다. 그러나 그의 시에서의 순수서정의 회복은 얼마 지속되지 않는다. 곧 이어 맞게 되는 광복으로 말미암아 격정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의 작품에서의 예술성은 빛을 잃고 만다.

1939년 4월『女性』지에 발표된「바다와 나비」는 그가 그렇게 경계했던 감상적(感傷的) 서정성을 담고 있다. 비록 소품이지만 가작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아모도 그에게 수심(水深)을 일러준 일이 없기에

힌 나비는 도모지 바다가 무섭지 않다

 

청(靑)무우 밭인가 해서 나려갔다가는

어린 날개가 물결에 저러서

공주(公主)처럼 지처서 도라온다

 

三月달 바다가 꽃이 피지 않아서 서거푼

나비허리에 새파란 초생달이 시리다

―「바다와 나비」전문

 

바다와 나비, 두 대상만으로 이루어진 간결한 구도의 작품이다. 바다라는 광막한 세계에 대비적으로 나비라는 연약한 생명체를 투여하고 있다. 현실적인 정황이라기보다는 인위적인 구성이지만 나비에 대해 연민의 정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은 이 작품이 상징적인 구조로 읽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우선 작품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제1연은 바다가 어떠한 존재인가 전혀 알지 못한 순진한 나비가 제시된다. 바다라는 대상이 얼마나 광막하고 위엄한 것인지 아무런 정보를 갖고 있지 못한 나비는 마치 하루 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는 격이다. 실로 아이러니컬한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제2연은 푸른 바다를 청무우 밭으로 착각하고 내려갔다가 여린 날개가 바닷바람에 절어 돌아온다는 내용이다. 물결에 절었다고 표현했지만 바다물결이 일으키는 소금기 어린 해풍에 절었다고 이해하는 것이 자연스럽다. 연약한 나비를 공주에 비유한 것도 재미있다. 구중궁궐에 갇혀 자라온 천진한 공주가 세상의 물정에는 손방인 채 무모한 바깥나들이를 시도한 것으로 본 것이다.

제3연은 나비가 안식을 얻지 못하고 계속 밤이 올 때까지 바다 위를 비상하고 있는 안타까운 모습을 그리고 있다. 계절은 아직 쌀쌀한 3월이다. 바다의 청무우 밭엔 꽃이 피지 않아 서글프다고 나비는 생각한다. 어느덧 밤이 되어 하늘에 뜬 푸른 초생달빛이 나비 허리에 차갑게 비치고 있다.

 

표면 진술은 나비에 관한 것이지만, 이것은 나비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광활한 세상에 던져진 연약한 생명의 실존 양상을 상징한 것으로 이해된다. 지상의 영장이라고 자부하는 인간도 예외일 수는 없다. 인간 역시 광막한 우주를 배경으로 본다면 한 마리 연약한 나비 못지않은 미물에 불과하다. 한 치의 앞도 제대로 못 내다보고 세파 속에서 허둥대며 살아가는 인간의 몸짓 역시 바다 위에 떠서 계속 나래를 퍼덕이고 있는 나비와 다를 것이 없다. 절망적인 인간 실존의 모습을 극적으로 표현해 내고 있는 작품이다.

 

김학동 교수는 「바다와 나비」가 1910년대에 발표된 소월(素月) 최승구(崔承九)의 「潮에 蝶」의 발상법과 유사함을 지적하고 있다. 바다의 흰 물결을 꽃으로 착각하고 뛰어들었다가 돌아오지 못한 나비의 운명을 그린 작품이다. 소월의 「潮에 蝶」이 김기림의 「바다와 나비」를 탄생시킨 동기가 되었는지는 확인할 길이 없다. 그러나 설령 영향을 받았다하더라도 크게 문제될 것은 없어 보인다. 발상은 비슷해도 표현의 기법이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바다와 나비」는 김기림의 시적 재능을 확인케 하는 수작으로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참고] 김학동 ‘소월 최승구의 시세계’『최소월 작품집』(형설출판사, 1982)p.104-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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