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자연학교

해몽

운수재 2007. 5. 16. 11:42

 

 

해몽(解夢)  /  임보

 

 

어느 강가에 이르는데

병풍처럼 늘어선 강 건너 산들이

온통 수런거린다

무슨 여고인가 하고 건너다보니

온 산천을 뒤덮고 있는 칡넝쿨들이

강을 넘어 이쪽으로 뻗어오느라 야단이다

깊고 푸른 강이 칡넝쿨의 기세에 눌려

숨을 죽인 채 엎드려 있다

이 꿈 얘기를 우이동 친구들에게 했더니

세상을 얻을 기막힌 징조라고

듣기 좋은 해몽들을 한다

하루 종일 별볼일 없이 지냈는데

자정(子正) 가까이 전화벨이 울린다

오래 잊고 있었던 지방의 시우(詩友)가 아닌가

내용인즉

어느 잡지에 발표된 내 작품을 읽다가

좋아서 소식을 보내노라 한다

한 친구의 목소리가

수천 리의 강들을 넘어 이렇게 오려고

꿈이 그런 호들갑을 미리 떨었던 것인가

아니면 내 시의 한 구절이

만 리의 허공을 넘어 그의 가슴에 가 닿으려고

내 꿈의 산천을 그렇게 흔들었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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