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자연학교

어둠의 등

운수재 2007. 5. 17. 04:53

 

 

어둠의 등 /  임보

 

 

세상에 만일 거울이 없다면

고인 물도 흐려 거울의 구실을 할 수 없다면

어둠의 빗장 속에 단단히 갇힌 자신의 얼굴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얼굴들은 (중 제 머리 못 깎듯)

스스로 제 얼굴을 못 보면서

서로의 남 얼굴만 뜯어보고 빈정대리

추녀도 남이 미인이라 하면 그렇게 여길 게고

미남도 남이 추남이라 이르면 그렇게 믿으리

제 모습 못 보는 눈 뜬 봉사들

그 꼴들 얼마나 가관이리

허나 세상에 밝은 거울이 있어

밤낮 들여다보고 치장하는 사람들아

거울이 있어도 볼 수 없는 어둠이 있다

아무리 버둥거려도 거울에 드러나지 않는

우리들의 등뒤는 아직도 어둡구나

흉측한 검은 점들이 박혀 있는지

아름다운 별 무늬가 반짝이는지

우리들의 후면은 아직도 어둠이구나.

 

'임보시집들 > 자연학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꽃방석  (0) 2007.05.19
법주사 부근  (0) 2007.05.18
해몽  (0) 2007.05.16
비천  (0) 2007.05.14
의 모죽지랑가  (0) 2007.0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