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등 / 임보
세상에 만일 거울이 없다면
고인 물도 흐려 거울의 구실을 할 수 없다면
어둠의 빗장 속에 단단히 갇힌 자신의 얼굴을
어떻게 드러낼 수 있을까
세상의 모든 얼굴들은 (중 제 머리 못 깎듯)
스스로 제 얼굴을 못 보면서
서로의 남 얼굴만 뜯어보고 빈정대리
추녀도 남이 미인이라 하면 그렇게 여길 게고
미남도 남이 추남이라 이르면 그렇게 믿으리
제 모습 못 보는 눈 뜬 봉사들
그 꼴들 얼마나 가관이리
허나 세상에 밝은 거울이 있어
밤낮 들여다보고 치장하는 사람들아
거울이 있어도 볼 수 없는 어둠이 있다
아무리 버둥거려도 거울에 드러나지 않는
우리들의 등뒤는 아직도 어둡구나
흉측한 검은 점들이 박혀 있는지
아름다운 별 무늬가 반짝이는지
우리들의 후면은 아직도 어둠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