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매(紅梅) / 임보
장경각(藏經閣) 뜰에 올라섰더니
한 백 살 되어 보이는 놈이
수만 개의 유두(乳頭)를 온몸에 달고
붉게 닳아 오르기에 하도 황홀해서
한동안 그놈 곁을 떠나지 못하고
나도 덩달아 얼굴을 붉히며 서 있었다
원통각(圓通閣) 뒤를 돌아섰더니
한 이백 살 되어 보이는 두 놈이
불쑥 나타나 장단지를 걷어붙이고
마치 씨름을 하듯 내 멱살을 잡고 흔들더니
육신(肉身)을 들어올려 허공에 띄웠는데
세상이 아스라해 보였다
그런데 허허
저것은 또 무슨 변고인가
무우전(無憂殿) 지붕 너머 때아닌 저 붉은 놀빛 말일세
골마리 싸매고 달려가 봤더니
원 세상에
삼백 살도 더 넘어 보이는 여남의 패거리들이
담장 밖에 죽 늘어서서
이른봄을 쥐어짜고 있는데
선암사(仙巖寺) 골짝이 온통 놈들에게 혼줄이 나
후들후들 멀미를 하고 있질 않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