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송(臥松) / 임보
누워 있는 솔을 보았는가
세상에는 그런 것도 있데
선암사(仙巖寺) 삼성각(三聖閣) 앞 연못가에
몇 백 년 묵은 소나무 한 놈
비늘 몸뚱이 꿈틀대며
용(龍)의 시늉으로 누워 있데
그런데 말이시
솔이 누우니까 세상이 변하데
서 있는 솔만 보던 사람들이
이놈 주위에 몰려들어
등을 어루만져 주기도 하고
허리를 받쳐 주기도 하고
어깨며 목을 괴어 주기도 하고
그렇게 야단 정성일 수가 없데
그놈을 한참 들여다보고 있다가
문득 세상사는 한 법도를 깨쳤네
우리 인생도 말이시
남들 뒤나 허둥대며 바삐 좇아갈 것이 아니라
세상의 모든 놈들이 달려가면
홀로 주저앉아도 보고
세상의 모든 놈들이 서 있을 땐
홀로 누워도 보노라면
누가 아는가 혹
그대도 누구의 눈에 들어
받침도 받고
괴임도 받으며
그렇게 호강일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