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장닭설법

화엄실

운수재 2007. 6. 4. 06:04

 

 

 

 

화엄실(華嚴室) /  임보

 

 

백담사(百潭寺) 대웅전 앞에 화엄실(華嚴室)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집이 있는데

그 집의 생김새가 참 묘하다.

남쪽의 추녀 끝은 부연을 달아 하늘을 떠받치듯 솟아 있고

북쪽의 지붕은 두부모서리처럼 잘려 있는 볼품없는 뱃집이다.

아직 못 본 이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림으로 대강 보이면 다음과 같다.

 

 

 (여기에 지붕이 드러나 보이는 그림을 넣을 수 없어 생략함) 

 

 

 

세상에 이 무슨 부조화란 말인가.

말하자면 두 양식을 결합한 엉터리 건물이다.

절의 주지에게 그 까닭을 물어도 대답이 석연찮다.

그런데 내설악 깊은 골짝에 숨어 있던 백담사라는 작은 절이

이 건물과 함께 근자에 와서 세상에 크게 드러났는데

연유인즉, 이 집을 거쳐간 바 있는 두 인물 때문이다.

한 분은 70여 년 전에 이 집에서 뒹굴며 『님의 沈黙』을 써낸 선사(禪師) 만해(萬海)이고

다른 한 분은 수년 전 몇 해 동안 적거(謫居)해 있던 전직 대통령 일해(日海)다.

한 분은 그 곧은 정신과 붓으로 세상을 뒤흔들었던 지사(志士)였고

다른 한 분은 그 책략과 뚝심으로 세상을 제압했던 장수(將帥)가 아니던가.

그들이 반 세기를 사이에 두고 같은 방에서 기거(起居)하며 그 집의 주인으로 만난 것인데

생각하면 <해(海)>자 돌림의 아호도 우연은 아닌가 보다.

두 바다의 거센 파도가 그 집의 토벽에 부딪쳐 얼마나 출렁거렸을 것인가.

나도 하룻밤 그 절방에 등짝을 붙이고 누워

두 바다의 물결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여 보면서

한 목수를 생각한다.

이미 기백 년 전에 눈 트인 한 목수가 있어

화엄실 용마루에 처음으로 먹줄을 놓을 때

장차 맞게 될 이 집의 주인들을 미리 생각했던가?

한 바다에는 날개를 달아 그 집으로부터 세상의 위를 치솟게 했고

한 바다에는 날개를 꺾어 이 집으로부터 욕심의 풍랑을 잠재우게 한

어느 목수의 화두(話頭)를 그렇게 지붕 끝에 매달았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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