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장닭설법

진달래꽃 / 임보

운수재 2007. 6. 6. 08:03

 

 

 

진달래꽃  /    임보

 

 

절의 마당에 차일을 치고

늙은 주지가 초례청을 만들었다

신랑은 석정(釋井) 스님

신부는 효동(孝童) 아씨다

 

네 살에 애비가 세상을 뜨고

다섯 살에 에미가 집을 떠나자

혼자 남은 할미가 손녀를 안았는데

그의 나이 열둘도 되기 전에

할미가 노망(老妄)에 이른다

그로부터

어린 손주 딸년의 등에 그 할미가 업혔는데

그 무거움 구구절절 어이 필설로 다 하리요

사람들이 그를 효동(孝童)이라 불렀다

스물이 넘어 혼기에 접어들자

여기저기 욕심내는 사람들은 많아도

할미가 혹이 되어 데려갈 자가 없다

그러자 부처님이

그 효성을 가상히 여겨

튼튼한 중놈 하나 골라 내려보냈는데

그가 곧 석정(釋井)이다

 

신부는 앞에 걸리고

신랑 석정이 할미를 업고 절을 오르는데

무겁지 않느냐고

까치들이 조잘대며 야단이자

중생을 업는 것보다야 이 얼마나 가벼우냐고

싱글벙글이다

온 산천을 가득 메운 하객들이

얼굴을 붉히며 따라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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