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헷갈린다 / 임보
갯가에 가면
도다리와 광어가 나를 헷갈리게 한다
어느 쪽으로 기운 놈이 그놈인지
수차례 설명을 들었건만 구분이 안 간다
가오리와 간재미
부서와 조기 놈들도 나를 홀린다
낙지볶음에 주꾸미를 넣어도 나는 모른다
이른 봄에 산에 가면
노란 수술꽃 매달고 있는
산수유 생강나무 헷갈린다
여름 들어 잎들이 무성하면
단풍, 은행잎이야 나도 잘 알건만
물푸레, 오리, 상수리, 굴참나무 들은
그놈이 그놈 같아 혼란스럽다
중국집에 가면
잡탕과 팔보채가 헷갈리고
양식집에 가면
수프며 스테이크들이 골치 아프게 한다
코 큰 서양놈들 보면
게르만, 앵글로색슨
터키, 아라비안들이 다 한 족속만 같다
더군다나
한잔 걸치고 돌아오는 저녁이면
지하철역의 상행선 하행선이 헷갈리고
아파트의 이 동 저 동이 나를 홀린다
층수를 잘못 잡아
남의 집 문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다
망신을 당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유심 2007.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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