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너무 헷갈린다 / 임보

운수재 2007. 6. 9. 06:00

 

 

 

너무 헷갈린다  /  임보

 

 

갯가에 가면

도다리와 광어가 나를 헷갈리게 한다

어느 쪽으로 기운 놈이 그놈인지

수차례 설명을 들었건만 구분이 안 간다

가오리와 간재미

부서와 조기 놈들도 나를 홀린다

낙지볶음에 주꾸미를 넣어도 나는 모른다

 

이른 봄에 산에 가면

노란 수술꽃 매달고 있는

산수유 생강나무 헷갈린다

여름 들어 잎들이 무성하면

단풍, 은행잎이야 나도 잘 알건만

물푸레, 오리, 상수리, 굴참나무 들은

그놈이 그놈 같아 혼란스럽다

 

중국집에 가면

잡탕과 팔보채가 헷갈리고

양식집에 가면

수프며 스테이크들이 골치 아프게 한다

코 큰 서양놈들 보면

게르만, 앵글로색슨

터키, 아라비안들이 다 한 족속만 같다

 

더군다나

한잔 걸치고 돌아오는 저녁이면

지하철역의 상행선 하행선이 헷갈리고

아파트의 이 동 저 동이 나를 홀린다

층수를 잘못 잡아

남의 집 문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다

망신을 당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유심 2007. 여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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