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시 읽기

개구리 울음소리 / 최창균

운수재 2007. 7. 5. 06:30

 

 

개구리 울음소리  /   최 창 균

 

개구리 울음소리에다

나는 발을 빠뜨렸다

 

어느 봄밤

물꼬 보러 논둑길 들어서자

뚝 그친 개구리 울음소리에다

나는 발을 빠뜨려

고요의 못을 팠다

 

한발 한발

개구리 울음소리 지워나갈수록

깊어지는 고요의 못에

내 생의 발걸음소리 빠뜨렸던 것

 

나는 등뒤에서 되살아나는

개구리 울음소리 듣고는

불현듯 가던 길 잠시 멈춰 뒤돌아보니

 

내 고요의 못이 왁자하니 메워지는 소리 듣는다

비로소 내가 지워지는 저 개구리 울음소리

 

나는 그 논배미에서

벌써 걸어나와 집에 누웠는데도

개구리 울음소리는 줄기차게 따라와

내게 빠져 온다

내 삶의 못에 빠져 운다

 

 

 

[감상 안내]

 

농촌의 들길을 밤에 걸어본 사람이 아니면 이 시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모 심을 무렵이면 무논에서 우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아주 요란하지요.

그 울음소리는 인기척이 있으면 그쳤다가 인기척이 사라지면 다시 살아납니다.

그러니 밤에 들길을 가는 사람은 잠시 개구리 울음소리를 지우며 간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온천지가 개구리 울음소리로 가득한 밤을 상상해 보십시오.

사람의 이동을 따라 그 사람 주위에 ‘고요의 공간’이 만들어졌다 이내 지워집니다.

등불을 들고 밤길을 가면 등불의 주위에 어둠이 밀려났다 등불이 지나면 다시 어둠으로 채워지는 것처럼 말입니다.

 

화자는 농부입니다.

밤에 논물을 살피러 들에 나갑니다.

논에 물이 적어도 문제지만 또 너무 많아도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날이 가물거나 비가 오거나 할 때 농부들은 밤잠을 설치며 물꼬를 보러 다닙니다.

물꼬는 논과 논 사이에 물이 들고 나는 곳입니다.

물꼬를 높이기도 하고 낮추기도 해서 논물을 조정합니다.

 

화자는 개구리 울음소리가 요란한 논둑길에 들어선 것을

‘개구리 울음소리에 발을 빠뜨렸다’고 합니다.

화자의 인기척을 듣고 문득 개구리 울음소리가 그친 것을

‘고요의 못을 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표현이 아주 신선합니다.

주위가 고요해지자 들리는 것은 화자의 발자국 소리뿐입니다.

화자는 자신의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자신의 ‘존재’를 확인합니다.

 

그런데 뒤를 돌아다보니

자신이 만든 ‘고요의 못’은 왁자한 개구리 울음소리로 다시 지워지고 맙니다.

거기서 화자는 자신이 지워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뿐만 아니라, 집에 돌아와 자리에 누워 있는데도

그 개구리 울음소리가 줄기차게 따라와 괴롭힙니다.

 

우리의 인생살이 또한 농부의 들길 걷기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입니다.

농부가 만든 ‘고요’의 족적(足跡)이 금방 개구리 울음소리에 다시 밀려 지워진 것처럼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일생 동안 만들어 놓은 행적(行蹟)이라는 것도

그가 떠나고 나면 세상의 물결에 밀려 금방 사라지고 말 것이 아니겠습니까?

(임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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