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이대로 가시려는가 / 유공희

운수재 2007. 7. 25. 09:22

 

이대로 가시려는가  /   유공희

 

낡은 지붕 밑 희미한 창으로

야윈 두 눈 떠보실 때마다

돌아오기 어려운 자식 이름 불러보며

몇 번이나 쓰라린 죽음을 맛보셨던가

 

가난하나마 사랑스러운 시골 노인들이

항상 고달피 누우신 자리를 찾아

세상에 드문 인정의 얘기를 울기만 하였단다

 

힘없이 야윈 두 눈 떠보실 때마다

흘리신 피땀 슬퍼도 안 하시고

어린 자식 새로운 살림살이의 꿈에

가슴 더욱 아프셨단다

 

지리한 세월을 청춘도 꿈도 잃고

시집살이로만 늙으신 후

어이 세상에 드문 사랑은

이 외딴 고을 낡은 지붕 아래

피눈물이 쏟아지도록 메마른 젖가슴에서

아직도 꽃같이 피는 것인가!

 

아, 나날이 주인도 없는 봄이

낯익은 산과 내에 스며오는 날

먼 가싯길 속으로 고향을 버린 것들 멀리 하고

어이 죄 없는 목숨이 이다지 모질게도 앓으시는가!

 

아, 돌아와 보는 고향은

항상 한없이 슬픈 얘기와도 같아

우리가 사는 땅은 언제나

무슨 병을 앓는 것이냐!

내 부르는 노래 속에도 네가 부르는 노래 속에도

우리의 어머니들은 항상 앓기만 하는 것이냐!

 

가엾은 이 나라 어둠의 세기에서 태어나

도적의 세상에서 피를 찢기며 살으시고

오늘 어린 자손들의 가슴속에

아름다운 이 땅의 새벽이 자는 날

고요한 산과 산 사이

푸른 시냇물이 흐르는 곳

어머니는 고운 사랑의 얘기 꽃같이 남기시고

눈물 속에 말도 차마 못할 설움 속에

이대로 눈을 감으시려는가!

이대로 가시려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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