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짐승과 더불어 / 유공희

운수재 2007. 7. 23. 07:36

 

 

짐승과 더불어  /  유공희

 

푸른 시내 얼음이 풀려 굽이쳐 흐르고

언덕마다 언덕마다 국거리 쑥잎이 돋는다

 

나막신 달그락거리고 오늘은

들로 가는 들로 가는 가시내들

검은 손가락마다 손톱이 희다

 

검치가 난듯 풀을 뜯는

늙은 염소 틈에 끼어

기름기 하나 없는 누런 대가리에도

흰 나비가 앉는다 꿀벌이 온다

 

푸른 하늘이사 가무러지도록 높고

누더기 틈마다

봄바람 못 견디게 흐뭇하건만

 

참벌 잉잉거리는 언덕 밑에

나막신 내던지고

우리의 가시내들은

흰 손톱마다 흰 손톱마다

풀물이 든다

 

추근해지도록 쏟아지는 햇볕 속에

굶주린 짐승과 더불어 이빨 내밀고

우리의 가시내들도 무엇을 소리쳐 웃는 것이냐!

 

날이 새며는 마을마다 골짝마다

나막신 달그락거리고 나오는

우리의 가시내들은

오늘도 흙내만 난다 흙내만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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