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산문

낙서 단상 / 유공희

운수재 2007. 8. 2. 12:29

 

낙서 단상  /  유공희

 

그날 회의에서 학생과장이 제출한 긴급 토의사항은 ‘변소의 낙서에 관한 건’이었다.

 ‘지워도 지워도 불사조처럼 살아나는 변소의 낙서를 완전히 소탕할 수 있는 묘안은 없겠느냐?’는 것이었다.

진지하게 중론(衆論)이 오고가는 동안, 나는 그 안건(案件)이 해학적인 데 비해 용렬하기만 한 의견들이 속출하는 것이 꼭 체홉의 어느 단편소설의 한 장면 같다고 생각했다.

구구한 의견들이 모두 채택의 여지가 없는 고식책뿐이어서 장내의 공기가 소연해 갈 때 나는 분연히 다음과 같은 요지의 대책을 제시했다.

‘변소와 식당은 본질적으로 동등한 문화 시설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 환경 관리의 실태는 공평한 것이 못 된다.

배설은 식사보다 몇 갑절 더 중요하고도 쾌적한 생리란 것을 강조한다.

바쁜 일상에서는 누려보기 어려운 그 한가한 시간에 무료한 만물의 영장이 눈앞의 무구한 공백을 그냥 둘 수 없는 것은 오히려 건강하고 창조적인 인간적 작위가 아닌가?

지워도 지워도 불사조처럼 살아나는 것이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소중한 건물의 벽을 보기 흉하게 미봉만 할 게 아니라,

하다못해 FM 라디오를 설치한다든가, 좋은 그림을 걸어 놓는다든가, 영장의 무료를 덜어줄 만한 환경 관리가 바람직하며 이는 또한 문명의 새로운 척도를 창조하는 계기도 되지 않겠는가!’

내 열변은 ‘예산이 불허한다’는 서무과장의 한 마디로 즉석에서 묵살되고 말았다.

나는 씁쓸한 소외감 속에서 고독한 명상에 잠길 수밖에 없었다.

국민학교 시절에 시절에 나는 저 유명한 로댕의 조각을 꼭 ‘똥 누는 사람’으로만 알고 있었다.

그 후 생각하는 자세가 용변하는 자세와 같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절실하게 체험해 왔다.

로댕의 그 걸작은 용변할 때 착상되었을 것이 틀림없고 그는 우선 눈앞의 벽면에 데상을 해 보았을 것이다.

식당의 훤조(喧噪)에 비해 변소 안의 그 한적한 동안이 얼마나 밀도 짙은 발상의 기회인가 하는 것은 저 구양수(歐陽脩)의 ‘삼상(三上)’ 속에 ‘측상(廁上)’이 들어있다는 사실로써 증명이 되고도 남는다.

동서고금 없이 변소야말로 ‘굿 아이디어’의 유현한 산실이었던 것이다.

배가 부르면 머릿속이 흐리고 배가 고플 때 머릿속이 맑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면 누구나 경험해 본 생리일 것이다.

용변하는 동안이 곧 두뇌의 정화 과정임을 더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식당의 그 요설(饒舌)과는 차원이 다른 인간의 지혜가 풍성하게 발화(發花)하는 그곳의 벽면에 불사조처럼 낙서가 살아 있는 소이(所以)가 여기 있다.

변소의 환경 개선안을 예산 탓으로 묵살하는 처사는 몽매한 행위랄 수밖에 없다.

낙서 하나 없는 말끔한 벽면은 마치 핏기도 없이 탈속해 버린 수녀의 얼굴처럼 삭막하다.

개발새발 개구쟁이들의 낙서로 알록달록한 골목안의 담 밑을 지날 때 흐뭇한 삶의 입김을 느끼며 안도의 미소를 짓게 된다.

로댕은 그 작품에다 금단을 범하고 낙원에서 추방된 ‘중간자(中間者)’의 비극적 숙명을 형상화 했는지도 모른다.

에덴동산에서의 아담이 그런 심각한 포즈를 취해 보았을 리가 없다.

이른바 ‘호모 사피엔스’는 ‘신의 형벌에 고민하는 인간’이란 의미가 될 것이다.

 ‘이성(理性)’이니 ‘지성(知性)’이니 하는 말들이 그래서 생긴 것 같은데 해괴한 것은 많은 철학자들이 그것을 인간 속에 깃들인 신의 속성으로 단전한다는 사실이다.

인간은 과연 신을 닮아서 사색하는 것일까?

인류의 고향은 본디 낙원이었고 그곳에는 사색 이전의 유희가 있었을 뿐이다.

인간은 ‘호모 사피엔스’이기 전에 ‘호모 루덴스’이었다. 신을 닮은 인간의 모습은 이맛살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리는 버릇 속에 있는 게 아니라 빈둥빈둥 흥얼흥얼 노니는 버릇 속에서 살아나는 것이다.

무료하다 못해 이 거창한 삼라만상을 창조해 낼 수밖에 없었던 그 엄청난 신의 권태를 인간이 조금 닮은 것이다.

우리를 한없이 경탄하게 하는 이 우주 만상이야말로 신의 위대한 낙서가 아닌가?

‘시는 자연의 모방’이란 말은 예술가는 조물주를 유일한 스승으로 삼으라는 말이요, 천재는 신의 무료를 무료해 할 줄 아는 인간이라는 그 수구초심(首丘初心)을 강조한 말이다.

우리도 어린 시절에는 모두 무료한 천사들이었다. 억울하게 ‘철’이 들어버린 어른들은 창구멍을 뚫는 아기 손에 입 맞추어 주고 마당 한쪽의 금잔디를 걷어내고 금모래 은모래밭을 만들어 주어야 할 것이다.

‘정말로 놀 줄 아는 것은 천재뿐이다’고 말하는 보들레르는 예술의 근원은 동심이라고 하는 것이요, 예술의 본질은 ‘장난’이라고 하는 것이다.

‘시인은 25세부터 전통에 매달린다’는 엘리어트의 말은 사람은 ‘철’이 들면서 속물이 되어 간다는 뜻이요, 예술가는 늙기 전에 죽는다는 말이다.

망가진 자전거의 손잡이와 안장을 땜질로 맞춰 ‘소머리’를 만들어 놓고 좋아하는 피카소는 90세가 넘었어도 골목 안 담벽에 낙서를 즐기는 개구쟁이의 유희심을 잃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일생을 한결같이 자기의 ‘유희’에 골몰하고 떠나가는 천재는 흔하지 않다.

 

연꽃 모양으로 청자연적의 꼬부라진 꽃잎 하나가 곧 수필이라고 말한 수필가가 있다.

가지런하게 꽃잎을 만들어 가다가 도중에서 한 개를 일부러 꼬부라뜨린 고려시대의 그 개구쟁이가 누구였을까.

그런 ‘동심(童心)’이 없어서 숫제 수필을 쓰려고 아니 한다고 그분은 말한다.

수필은 ‘철’든 사람이 철없이 집착할 문학은 아닌 성싶다.

써도 그만이요, 안 써도 그만인 것이라고 달관할 일이다.

함부로 섬기려 들다가는 도리어 모독을 범하기 십상인 그런 대상인 것만 같다. (1979. 수필문학,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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