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 유공희의 글/유공희의 시

신이여 말하소서 / 유공희

운수재 2007. 8. 26. 08:24

 

 

신(神)이여 말하소서 /  유공희

 

 

뜰엔 차디찬 가을비 소리 쉴 새 없고

하얀 빗방울들 유리창에 매달리어

잠들기 싫은 원한을 말하도다

 

혹은 가난한 어머니 젖가슴에 매달려

보채우는 갓난애 울음소리인 양

 

오 내 귀엔 새빨간 태초의 설움이 복받칠 때

비는 한떨기 촛불을 침노하는 어둠과 더불어

땅 위에 모든 꽃송이를 묻고 밟는도다

 

슬프도다 이 땅의 삶의 얼굴

무덤 같은 이 한밤

호수처럼 눈뜬 마음이 하나

한없이 잠들기 무서워

 

그대 품에 매달려 떨고 있나니

이 같은 밤엔

그대 고요히 말하는 소리

들릴까 하여… 들릴까 하여…

(1942. 10. 동경)

 

'유상 유공희의 글 > 유공희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까만 호수 / 유공희  (0) 2007.08.28
침상 / 유공희  (0) 2007.08.27
심(蕈) / 유공희  (0) 2007.08.25
못 / 유공희  (0) 2007.08.24
미풍 / 유공희  (0) 2007.08.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