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평설]
'유희(遊戱)하는 천사' 혹은 '산책하는 지성인'의 육성
조 창 환
유상(愉象) 유공희(柳孔熙) 선생의 제자가 되었다는 추억은 내 삶의 잊지 못할 부분으로 남아있다. 인생을 여유롭게 바라보는 눈을 지니고 문학과 예술의 교양을 쌓아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마음을 중히 여기는 삶의 자세를 나는 그분에게서 배웠다. 예나 지금이나 우리나라의 고등하교 교육은 대학 입시를 준비하는 공부벌레들이 모여 실용성과 기능성을 추구하는 경쟁의 터전에 불과한데 그런 삭막한 공간에서 인간미 있는 유머와 삶의 지혜를 보여주신 분이 유공희 선생님이었다.
서울 중 고등학교 시절 우리는 참으로 훌륭한 선생님들을 많이 만난 것 같다. 우리를 가르치신 선생님 중에는 국회의원이 되신 분도 있었고, 대학교수가 되신 분도 있었고, 시인도 있었다. 문학 창작에 흥미와 관심을 가지고 있던 나는 특별히 훌륭하신 국어 선생님들을 많이 접하는 행운을 누린 셈이었다. 국어학자 강신항 선생님과 시인이신 조병화 선생님은 중학교 때 국어와 작문을 가르치다 대학으로 자리를 옮겼고, 깐깐하신 유혁종 선생님은 이화여고로 직장을 옮겼다. 유공희 선생님은 4.19와 5.16을 겪던 1960년대 초반 국어교사로 재직하시면서 문예신문반 지도교사를 하셨다.
선생님의 국어 시간은 남다른 데가 있었다. 학생들에게 보들레르와 랭보의 시세계를 들려주시는가 하면, 앙드레 지드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이야기를 해 주시곤 하였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를 성취하는 것 못지않게 거기 도달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것, 진정한 삶의 감동을 느끼려면 진지한 장편소설을 많이 읽으라는 것, 생활의 멋은 실용적 가치를 벗어난 참다운 여유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기억이 난다. 입시를 염두에 두고 교과서 진도에 얽매인 수업에만 몰두하는 오늘날의 교육 환경에서는 상상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나는 내심 선생님의 넓고 깊은 독서량과 풍요로운 사색의 궤적에 경탄과 흠모의 감정을 느꼈다.
선생님은 우리 학생들을 인격적으로 성숙한 어른처럼 대해 친한 친구에게나 해줄 만한 마음 속 이야기를 들려 주셨다. 학창시절 현해탄을 건너가는 배 안에서 무식한 일본 순사가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가난한 사람들 의 ‘가난한’ 이라는 제목만 보고 무슨 이상한 좌익계열의 불온서적이나 되는 듯 의심하여 책을 빼앗아 간 이야기라든지, 학생 때 한꺼번에 세 가지 책을 읽었는데 전차 안에서는 문고본 문학서적을, 집에서는 학술서적을, 그리고 수업시간에는 선생 모르게 월간 잡지를 읽었다는 이야기라든지, 속물적 가치관에 물든 제자가 찾아와 교감도 아니고 교장도 아니고 평교사로 계신 것을 답답한 듯 이야기하자 “나는 수업시간이 없으면 선생노릇 할 맛이 없어진다.”고 대답하시며 ‘그냥 선생’으로 사는 것이 더 좋다는 말씀을 하셨던 기억이 난다.
이런 선생님의 가슴 속 이야기가 이 문집 물 있는 풍경에는 고스란히 담겨져 있다. 이 책에 실린 에세이들에는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고 여행을 즐기며 자연을 관조하는 지성적 교양인의 정신적 궤적이 가감 없이 드러나 있다. “예술이란 ‘육체’의 형자화(形姿化)다.… 인간의 생활이란 ‘자연’을 죽이고 ‘형자’를 획득하는 활동이다.”(「팔월의 독백」)라는 말은 어떠한 현학적인 예술론보다도 예술 양식이 지닌 인간 육체의 미적 표현의 정곡을 찌른 것이요, “영원히 언어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상이 있는 것이다.”(「오열하는 모음의 세계」)라는 말은 인습적 언어의 타성을 벗기 위하여 노력하다 절망하는 문학가나 철학가의 신음소리를 상징한 말이다.
“인생은 평범한 것이다. 조금이라도 지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권태 이상의 허무까지 느끼게 해 주는 것이 인생의 범용성(凡庸性)이다.”(「그냥 선생의 변」)라는 말은 실존철학의 핵심을 시니컬하게 은유한 말이 아닌가. 선생님은 이 부분에서 토마스 만의 소설 토니오 크뢰거 가운데 나오는 ‘범용성(凡庸性)의 법열(法悅)’이라는 말을 인용하시면서 인생에 대한 온갖 감상(感傷)과 욕심을 극복하고 범용성 속에서 체관(諦觀)을 누린다는 것은 고도의 지성이 획득한 생의 인식이라고 보았는데, 이러한 생의 범용성을 자각한 자리에서 평범한 인생을 에누리 없이 받아들이면서 불안이 없는 마음이 자족의 징표로 표현되는 표정이 미소라고 하시는 말씀은 기막힌 삶의 지혜가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삶의 자족을 누리는 사람은 무용이나 산책 같은 목적 없는 걸음걸이의 여유와 흥그러움을 즐길 수 있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이기 전에 ‘유희하는 천사’가 아니었을까?”(「좌석제 인생」)라고 반문하는 선생님의 표정에는 인생의 여정을 풍성하고 너그럽게 즐기며 살아가는 지성적 교양인의 목소리가 배어 있다. 선생님은 특별한 유머 감각 또한 이러한 생의 지혜와 연관된 삶의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 아닌가 생각해 본다. 학창 시절 문예신문반 학생들이 선생님을 모시고 야외로 놀러간 적이 있었다. 마침 음료수를 마실 컵이 없어 불편해 하자 선생님은 사과를 잘라 속을 파내고 술을 따라 마시면서 재미있어 하시던 것이 생각난다. 생활 속에서의 여유와 멋을 알고 인간미 있는 웃음을 즐기는 태도야말로 진정한 자유인만이 지닐 수 있는 삶의 방식이 아닐 것인가. 에세이 「웃음의 역사」에 피력된 웃음에 대한 해박한 이론적 정리도 놀랍거니와 인간관계에서 적의를 버리고 선한 미소로 대하는 자세는 향기로운 생의 실천이 아닐 수 없다.
에세이 「물 있는 풍경」을 보면 선생님이 얼마나 낭만적인 분인가를 알게 한다. 호수나 강이나 바다는 원래 낭만주의자들이 즐겨 소재로 취하던 배경이요 무대였다. 저녁놀 흐르는 강변이나 아침 안개 밀려가는 호수, 남빛 파도 넘실거리는 바다의 풍경은 인간의 혼을 어루만지고 위안하며 영원한 자유와 동경에 도취하게 하는 마력을 지녔다. 거기서 느껴지는 무한에의 감촉은 구할 길 없는 권태의 각성이며 그 신비롭고 달콤한 비애 속에서 태초의 신들이나 누렸을 법한 현란한 정신적 무위(無爲)를 체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낭만적인 혼의 울림은 선생님이 얼마나 생의 여백을 귀히 여기며 사랑하는 삶을 살았는가를 보여준다.
유공희 선생님이 상당히 많은 분량의 시 원고를 남기신 것은 놀라운 일이다. 생전에 시인이나 수필가로 나서기를 굳이 사양하셨지만 수필 이외에도 시를 꾸준히 쓰고 다듬고 정리해 두신 것을 보면 그분의 문학적 열정을 짐작할 수 있다. 시작품들은 반세기가 훌쩍 지난 오늘의 시점에서는 그 정서나 어투가 다소 낡고 진부한 느낌을 주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려운 시대를 살다 간 한 지성인의 내면을 드러내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소중한 역사적 의미도 있다고 생각된다.
대동아 전쟁 때 학도병으로 끌려간 중국 대륙에서 양자강 주변의 들판에 매복해 있다가 들새 소리에 끌려 소리 나는 곳으로 포복해 가다가 이끼가 퍼렇게 낀 깨어진 기왓장을 발견하고 역사의 무상을 자각하는 「ILLUSION」이라는 시는 비인간화 되고 참혹한 전장의 한 가운데서 체험하는 존재의 허망함을 일깨워준다. 시적 형상화에 있어서는 다소 설명적인 면이 있지만 경기관총 연발하는 소리 들리는 전장에서 들새 소리를 찾아 포복하는 시인의 모습은 차라리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이 시의 제목을 환청(幻聽)이라는 의미의 「ILLUSION」이라고 붙인 것은 의미심장하다. 들새의 울음소리가 환청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이 환청이라는 의미이며, 들새의 울음소리 나는 현장에서 찾은 것이 깨어진 기와조각이라는 것은 아름다움이 파탄에 이르는 현실의 잔혹함을 상징한다. 들새의 울음소리에서 워즈워드의 시에 나오는 뻐꾸기를 연상하며 위험을 무릅쓰고 새를 찾아 나서는 모습은 파멸을 예감하면서도 미적 이상향을 찾아 모험의 길을 떠나는 낭만주의자들의 아이러니를 연상시킨다. 이러한 낭만적 아이러니야말로 우리의 삶을 진정 여유롭게 하고 아름답게 하는 원동력이 아닐 것인가 생각해 본다.
사랑을 노래한 시편들도 많이 남겼는데 대체로 우아하고 부드러운 언어로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사모의 감정을 노래한 것들이다.
별이 반짝일 무렵
꿀벌 나르듯 하늘에 가득히
별이 빛날 무렵
보얗게 서린 안개 속에
탄식하는 그대 입김에 젖어
꽃도 우는 이 밤엔
갈댓잎 사이
어둠에 젖어 축축한 기슭에
잠들기 싫은 저녁을 소녀처럼 아끼어
그대는 푸른 조약돌
진주처럼 슬어라
- 「호수」
1946년에 쓴 이 시는 벌써 60년이나 지난 만큼 언어감각이나 감정의 고백에 있어 다소 직설적이고 예스러운 맛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시에 표현된 투명하다 할 만큼 맑은 감성과 고요한 명상적 어조는 세계와 인간을 선하고 아름다운 시선으로 대하는 시인의 내면 풍경을 잘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시들은 시적 기교가 추구하는 언어예술적인 측면을 따지기에 앞서 한 인간이 지닌 순정하고 정결한 혼의 떨림과 고백을 진솔하게 보여준다는 점에서 귀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라 하겠다.
그밖에 생활 주변에서 발견한 자연물을 소재로 한 풍경 시들이 있고 교양적 단상에 가까운 시작품들도 있는데 모두 솔직하고 겸허하고 순수하게 자신의 내적 세계를 표백하여 드러내 보여주는 것들이다.
유공희 선생님의 에세이와 시들을 통하여 우리는 어려운 시대를 겪으면서도 정신의 여유와 삶의 멋을 잃지 않고 지성과 교양의 바탕 위에 인생을 풍요롭게 살다 간 한 인간의 내면을 접하게 된다. 진정한 아름다움이란 어떤 것이며 진정한 삶의 가치란 어떤 것인가를 몸소 가르쳐주신 선생님의 글들을 읽으면서 새삼 존경과 감사의 감정을 느낀다.
(아주대 교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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