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기억으로 가는 징검돌 / 차주일

운수재 2007. 11. 19. 05:05

 

 

기억으로 가는 징검돌

차 주 일(시인)

 

나는 그곳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자랐다. 내가 단 한 번만이라도 잡고 싶었던 손목을 가진 소녀도 그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나는 가끔 나의 유년을 돌이켜 보곤 하는데, 그때마다 징검돌처럼 밟아 넘어 가야하는 것이 있었다. 유년시절을 생각하면 우선 숨이 가파오르고 맥이 급히 뛴다. 바로 이때가 내가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중이다. 사실은 그 소녀의 손목에 내가 이끌리고 있을 뿐이었지만. 나의 유년은 수없이 많은 손멀미를 감당해 낸 흔적이다. 그 소녀의 손목을 잡아보기 위해 얼마나 많은 손멀미가 심장으로부터 일었던가. 그 가시네의 뺨 역시 붉어졌었던 기억이고 보면, 그 소녀의 심장이 멀미 앓듯 뜀으로 가시네로 가시네로 여물어 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겠나 싶다. 이렇듯 첫사랑과 나는 분명 같은 곳에서 유년을 보내고 있었다.

 

그 가시네의 손목에서 고백을 풀어놓는 맥박이 그리운 나는 바지주머니 속에 蓮實 하나를 넣고 다닌다. “2000년 전의 연실이 발아”했다는 뉴스를 보고 난 뒤부터였다. 무엇이 그를 죽을 수 없게 했는가와 얼마나 견고해야 그리 견뎌낼 수 있는가를 생각하곤 한다, 늘 내게 가장 견고한 것이 무엇일까로 자문해 버리고 말았지만. 그러나 이제 그리 어렵지 않게 답할 수 있게 되었다. 내게도 ‘첫사랑’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첫사랑’은 가장 견고한 나의 것이 되어 있었다. 소멸하지도 않고 발아하지도 않은 나의 첫사랑은 연실보다도 더 지독한 그리움으로 탈각을 꿈꾸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첫사랑에게 가장 최적의 토양은 나였지 않았겠는가. 내 호흡과 그리움이 이탈해 있으면 있을수록 더욱 포근해 했을 첫사랑은 볕도 없고 물도 없는 곳에서 천년을 견디어 온 蓮實처럼, 지! 금도 수면 위의 어떤 맥을 짚고 있을 것이다.

 

첫사랑의 유년시절, 손멀미의 맥박을 그래프로 그려 본 적이 있었다. 주먹만한 원 하나가 그려지고 그 원을 품은 다른 원이 그려지고, 또 그 원들을 품고 있는 원이 그려져 있었고, 그 원을 또 다른 원심이 밀어내고---, 나이테처럼 삐뚤게 굵어지는 원이 운동장 한 귀퉁이를 다 채우고 있었다. 그리고 허리를 펴고 일어났을 때, 나의 그래프가 등고선에 붙들려 있는 ‘다랭이 논둑들과 참 닮았다’라며 혼잣말로 궁시렁거리고 있었다. 그 가시네가 수줍음만큼 빨리 도망쳤을 때도 그랬다. 다랭이 무논은 가시네의 뜀박질을 잔상처럼 퍼뜨리며 저쪽 논둑에 부딪히고 있었다. 그 파랑을 넘는 소금쟁이의 발질에 일으켜진 원, 써레를 끄는 소가 내뿜는 호흡에 그려진 원, 아버지의 발목에 차여 다시 생겨나는 원, 나뭇잎의 무게가 퍼뜨리는 원, 비의 외침을 그려내는 원, 그 원을 지우며 생기는 바람의 원, 둥지에 쓸 진흙을 쪼며 부리가 만들어 놓는 원--- , 다랭이 무논은 수많은 원을 품어 주고 있었다. 결국은 제 모양대로 말이다. 나는 생각했다, 그 가시네가 맥박으로 내게 한 고백이 저리도 많은 것들과 어우러지고 있다고 말이다. 그 논둑을 내달리던 아이는 지금 어디에 있는 것인가? 나는 그때로 돌아가야 한다. 유년의 맥박에 닿으려면 나는 늘 첫사랑을 밟고 가야만 했다. 영매 같은 첫사랑이 아니면 어느 것도 나를 유년으로 데려다 주지 못하였다. 이미 주소로만 존재하는 그곳, 나는 무엇으로 기억해야 하는가. 첫사랑을 멋지게 고백해 주던 다랭이 무논은 사라지고 없다. 나의 뜀박질과 나의 손멀미는 아파트 벽에 부딪혀 고꾸라지고 있다. 이렇듯 등고선을 그릴 수 없는 세상에서 우리의 아이들이 첫사랑을 하고 있다니!

 

나는 어떻게 선인들의 첫사랑을 기억해 왔는가, 누가 나의 첫사랑을 기억해주겠는가, 아니 무엇을 밟고 첫사랑이 있는 그곳에 도착이나 할 수 있겠는가, 나는 그곳에 이를 수 있는 징검돌 하나 놓아본 적 있었는가, 연실이나 첫사랑보다도 견고한 콘크리트와 어떻게 싸워야 하는 것인가 등 많은 자문들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곤 했다.

 

‘나는 첫사랑이 죽지도 발아하지도 못하도록 화석 같은 시를 써야 한다. 시의 껍질 속에 사라져 가는 것들을 담아둬야 한다. 그래서 내 아이들이, 그 아이들의 아이들이, 내 시를 통해 내 첫사랑을 기억할 수 있도록 그리고 잊혀지지 않도록 말해 주어야 한다. 수천 년이 지난 날, 한 아이가 손목에 뛰는 맥박으로 첫사랑을 고백할 수 있도록, 그 손목을 잡고 있던 아이가 다랭이 논둑 같은 첫사랑의 그래프를 그릴 수 있도록, 나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것들과 처절하게 싸워내야 한다.’

 

등고선처럼 지저귀던 새들의 날갯짓, 풀내를 그대로 되돌려 주던 소의 똥, 산맥이나 물길이 구역해 놓은 경계를 인정하며 순응하던 산것들, 음지의 습으로 푸른 것들과 양지의 볕으로 푸른 것들, 그것들의 순교로 살아 묵념할 수 있는 사람들…

 

나는 그들을 기억하고 있는가?

 

나의 시는 그것들의 순교를 기억하고 있는가?

 

나의 시가 그곳에 이를 수 있는 징검돌이 될 수나 있는 것인가?

                                                                                            (우이시 제204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