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

보이지 않는 손들 / 임보

운수재 2007. 11. 29. 09:49

 

보이지 않는 손들/   임보

 

세상을 다스리는 것은

뱃심좋게 공약을 외치며 허공 높이 쳐드는 정치인들의 검은 손이 아니라

불의를 고발하고 악을 심판하는 용감한 민초들의 정의로운 흰 손이다

 

세상을 살지게 하는 것은

회전의자에 묻혀 계산기나 잘 두드리는 기업인들의 두툼한 손이 아니라

선적 일을 지키기 위해 밤새워 기계를 돌리는 공장의 기름 묻은 손,

그리고 땡볕에 들판에서 온종일 땀흘려 김을 매는 거친 농부들의 손이다.

 

세상을 끌어올리는 것은

얼굴 내밀기 즐겨하는 대학의 총장들이나 약삭빠른 어용교수들의 구부러진 손이 아니라

밤 깊도록 불을 켜 놓고 연구실을 지키는 겸허한 학자들의 곧은 손이다.

 

세상을 더 무너지지 않도록 떠받치는 것은

백화점에서 수백만 원짜리 모피코트를 흥정하는 붉은 매니큐어의 손이 아니라

구멍가게에서 몇 백 원어치의 콩나물을 소중히 안고 돌아오는 마디 굵은 손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꾸미는 것은

화려한 의상 향긋한 향수로 화사하게 치장한 멋진 여인들의 손이 아니라

길가에 떨어진 휴지를 줍기도 하고, 벙어리 저금통을 의연금함에 몽땅 쏟아 넣기도 하는

고사리 같은 어린 손이다.

 

세상을 구원하는 것은

하늘을 찌를 듯 우뚝 솟은 장엄한 사원에서 기도하는 성직자의 경건한 손이 아니라

가난과 질병으로 거리에 버려진 불행한 이웃들을 남몰래 찾아다니며

고통을 나누는 사랑의 손이다.

 

그래도 아직 세상을 이만큼 지켜 온 것은

총과 칼의 힘이 아니라

세상에 드러난 유명한 얼굴들 때문이 아니라

자유와 평화를 생명처럼 사랑하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손들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