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시 창작에 관하여
고 창 수(시인)
1. 시에 대한 나의 생각
나는 시의 정의를 매우 넓게 잡고 있다. 인간의 인식, 사상, 환상, 느낌, 정서 등을 시적으로 표현한 것은 일단 시의 범주에 들어간다고 본다. 물론 시의 속성과 기능은 다종다양하며, 시대, 지역, 이념에 따라 그 양상이 다르다. 이 글에서 나는 시의 사회적 기능보다는 예술적인 면에 치중하려고 한다.
시를 하나의 꽃에 비유한다면 한국 시는 한국말이 피워내는 꽃이다. 시인은 이 꽃을 아름답게 피워내고, 아울러 한국어를 순화하고 풍부하게 하고 깊게 하는데 이바지 하여야 한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는 말도 있지만, 한국 민족의 존재의 총체를 담았다고도 할 수 있는 한국어의 세계를 넓고 깊게 또한 비옥하게 하는데 시인은 맡은바 사명을 다해야 한다.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시적 가능성을 최대화하는 데에도 이바지 하여야 한다. 또한 시인은 자기의 모국어와 시의 지평을 넓히기 위하여 많은 탐색과 실험을 하여야 한다. 우리의 생활양식과 내용은 급격하게 변천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시의 형식과 내용도 변하고 있고 또한 변해야 한다. 시인은 또한 인간의 정신활동에 앞장을 서야 한다.
시가 인간의 현실에 뿌리를 내려야 함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시가 예술인 이상 시인은 역사적 현실 못지않게 예술적 현실을 중시해야 한다. 아울러 시는 상상력에 의하여 심화되고 풍부해져야 된다. 예술작품에서 결코 상상과 허구를 제거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상력도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경험과 전혀 무관하다고는 할 수 없다. 상상이나 꿈, 무의식 같은 현상은 인간의 개별적 경험 및 원초적인 집단 경험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고 본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하지 않는다고 하여 예술창작에서 상상, 환상 또는 허구를 경시해서는 안 된다. 누가 음악작품이 일상적인 현실만 그대로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는가. 시인들의 말장난을 경계하는 말을 종종 듣는데, 물론 말장난만으로 시가 될 수는 없겠으나, 어떤 의미에서 시는 때로는 말장난 속에서 태어난다. (시는 가슴으로 써야지 머리로 써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듣는 일이 있는데, 이런 말은 문학의 본질을 바로 보지 못하는 결과라고 생각한다. 시는 언어로 쓰여지는 것이며, 언어는 머리 속에 있고 정서나 감성도 내포한다.) 시인의 기능에는 인류의 지식, 지혜, 깨달음을 더해주는 일도 포함된다.
시의 기능 중에는 음악가, 화가, 철학가와 비슷한 기능이 있다. 이러한 개념을 염두에 두고 나는 시의 창작에 임한다. 시인으로서의 나의 주된 관심은 나 자신과 인간의 현실적 희로애락과 존재의 번뇌를 포함한다.
2. 시의 소재 및 창작과정
나는 시의 소재를 일상생활, 사색, 독서 등에서 찾을 때가 많으며, 계획적으로 소재를 미리 정
하고 한 줄 한 줄 쓰는 경우도 있고, 즉흥적으로 시를 써보는 경우도 있다. 타자기 앞에 앉아 즉흥적으로 시를 쓰는 경우, 자유연상법 또는 자동기술법 비슷한 발상법을 나름으로 만들어 쓰는 때가 있으며, 소재를 오랫동안 염두에 두고 시구를 한 줄 한 줄 메모하면서 써내려 가는 경우도 있다. 나는 시를 창작하는 행위가 시의 바다에 낚시 줄을 드리우는 것에 견주어 볼 때도 있다. 이러한 바다는 나의 일상적 현실과 의식 및 무의식의 세계를 내포한다. 이러한 바다를 풍족하게 하기 위하여 나는 그간 우리의 고전시가와 현대시를 많이 읽었으며, 세계시도 많이 읽고 있다. 한국어에 대한 친숙과 애착을 심화하려고 노력한다. 지하철, 음식점, 시장, 극장 같은 삶의 현장에서도 사람들의 육성을 경청한다. 한국 시인은 마땅히 한국의 시적, 문화적 전통 속에서 창작을 하는 것이지만 세계문학에서도 인류공통의 시적 소재를 얻어올 수도 있고 또 그래야 한다. 나는 시인으로서 인간 존재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중요시하며 나름대로 시적 철학적 사색을 계속한다. 시인은 종종 신들린 마음으로 시를 쓰는 경우도 있다. 한국시를 외국어로 번역하면서 세계독자들을 대상으로 우리의 시적 발언의 지평을 넓힐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든다.
3. 시의 음악성에 관하여
리듬은 시의 맥박이다. 이 맥박은 시인 개인의 맥박일 뿐 아니라 한국사람과 한국말의 맥박이기도 하다. 이 맥박은 또한 한민족의 원초적인 맥박이고 태고로부터의 율동이기도 하다. 시인은 그러한 맥박 속에서 자기의 시의 리듬을 얻어온다. 이 율동과 가락은 한민족의 희로애락이 배인 것이며, 한민족의 울음소리와 웃음소리가 섞여있는 것이다. 나의 경우 어떤 음악적 충동이 시의 영상과 내용을 촉발하는 경우가 있다. 시의 구성요소인 음악성, 이미지, 사상은 서로 얽혀 있고 피와 살이 통하고 있어서 그 어느 하나를 따로 떼어낼 수가 없다.
나는 그간 내 마음에 흡족한 시를 별로 쓰지 못하였고 위와 같은 나의 생각을 충분히 실현해보지 못했다.
위에서 내가 설명한 창작과정(특히 시의 음악성과 관련하여)을 예시할 수 있는 작품을 아래에 소개한다.
1) 뱃노래
목청에 피맺히는 육자배기 가락에 맞추어
배는 뭍을 떠났습니다.
바람에 팽팽한 돛의 서정은 없어도
뱃길 위에 기러기가 꾸미는 서정은 없어도
그림 속 같이 순수한 빛 속에
보내는 사람도 슬픔도 없는 순수한 이별 속에
배는 떠났습니다.
사람의 소리는 돌려보내지 않는
별빛만 빛나는 고요 속으로
떠났습니다.
우리 가슴에 번쩍이는 아픔을 남겨두고
배는 떠났습니다.
심청의 넋이 끝없이 가고 있는
그 수심을 헤아리며
떠나는 심청의 가락으로 흔들리며
용골을 언뜻 언뜻 물 위에 번뜩이며
배는 9만리 길을 떠났습니다.
2) 바다가 날 부르는 목소리는
바다가 날 부르는 목소리는
바닷바람에 실려오는 불꽃입니다.
바다색깔로 파랗게 질린 불꽃입니다.
불러도 불러도 뒤돌아보지 않는 불꽃입니다.
앞만 바라보며 가마에 실려가는 신부같이
말문이 막힌 불꽃입니다.
바다가 날 부르는 목소리는
눈도 귀도 없는 불꽃입니다.
겉으로는 피어 오르고
속으로는 꺼져가는 불꽃입니다.
3) 황진이
황진이를 생각하며 걸어가는 길엔
한석봉이 떡 자르듯
한석봉이 떡 자르듯
눈을 감고도 시를 쓸 수 있었던
황진이를 생각하며 걸어가는 길엔
이승의 칼날도
저승의 칼날도
담담히 받을 수 있었던
황진이를 생각하며 걸어가는 길엔
칼날 같은 새벽이 터오는 것이었습니다.
시퍼런 작두 날 위에 서듯
시퍼런 작두 날 위에 서듯
이승의 칼날도
저승의 칼날도
온몸으로 넋으로
받을 수 있었던
황진이를 생각하며 걸어가는 길엔
칼날 같은 새벽이 터오는 것이었습니다.
칼날 같은 새벽이 터오는 것이었습니다.
위의 시 1)과 2)는 눈에 보이는 풍경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것이 아니고 풍경이 시인의 마음에 일으키는 연상과 감정을 음악적 율동 또는 페이소스로 표현하면서 하나의 상상의 풍경을 그려낸 것이다. 시 3)은 황진이에 대한 시인의 개인적인 또한 역사적인 태도를 음악적으로 표현해본 것이다. 황진이에 대한 전기적인, 사실적인 서술이 아니고 시인 자신의 심경 속에 일어나는 희로애락의 가락을 표현주의적 기법으로 표출해본 것이다.
(우이시 제21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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