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서울 / 임보
서울이 무너지고 있네
시공관도 태화루도 화신도 다 사라져 버리고
종로도 태평로도 소공동도 무교동도 다 무너져 내리고 있네
청계천도 한강도 남산도 북악도 헐리고 덮이어서
다 옛날의 그것들이 아니네
옛 집 옛 동네들 다 어디로 갔는가
인걸은 떠나도 산천은 그대로란 말
옛 시인의 허망한 시구로다
낯익은 골목 정답던 강변들 다 허물어지고
소돔의 성보다 더 무거운 콩크리트 벽들이
괴물처럼 솟아오르고 있네
거리는 사람대신 차들의 홍수로 출렁대고
버터와 치즈의 냄새들이 점령군의 횡포를 부리는 골목
개선행진곡처럼 울려퍼지는 저 색소폰 전자악기들의 아우성
벽마다 번쩍대는 전광판 밑을
밀랍 인형같이 코를 세운 젊은 여인들이
엉덩이를 흔들며 지나가네
아, 소음과 매연만이 득실거리는 유령의 거리
이른 봄날 응달의 겨울눈이 녹아내리듯
그렇게 서울은 힘없이 녹아
하수구로 하수구로 스며 사라져 가네
정겨운 풍광 구수한 인심들 다 어디로 갔는가
서울이 있던 자리에 서울은 다 떠나고
황량한 바람들만 밀려 와서
소용돌이치고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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