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카락/ 임보
우리들의 머리 위에 돋아나
나부끼는 저 머리카락들은 무엇인가
눈썹이 눈 위에 자라나
눈을 지키는 그들의 일을 하듯
흔들리는 천만사(千萬絲) 우리들의 두발(頭髮)도
무엇을 위해 그렇게 있으리니
나무들이 그 뿌리를 내려
땅속의 자양들을 빨아올리듯
허공에 출렁이는 우리들이 모발(毛髮)은
먼 은하의 별빛들에 닻을 드리우고 있는
우리들 영혼의 뿌리인가 보다
장차 우리가 돌아갈 먼 세상의 길을 더듬는
심령의 안테나인가 보다
그렇다면
우리의 머리를 곱게 다듬는 저 이발사여
잠시 손을 멈추라
그대의 칼이 우리들 영혼의 뿌리를 도륙(屠戮)하는
백정(白丁)이면 어이한단 말인가
어떤 것은 흑발
어떤 것은 은발
어떤 것은 부드러운 갈색
윤기 어린 젊음의 머리칼은 다 아름답구나
우리들 심령의 안테나 이들에게 칼을 대지 말라
그런데 저것은 또 무엇인가
나이 든 자들이 한결같이 붙들려 있는
저 백발(白髮)은 무엇인가
모든 빛들의 거부
비어 있는 없음의 빛
백색의 모발―백발의 의미는 또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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