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놈들의 세상 / 임보
장마철에 뜰에 내려섰더니
잡초들이 마당 가득 돋아나 있었다
호미를 들고 한 서너 시간 실갱이를 하다 지쳐
그만 들어오고 말았다
20여 평 마당에서 겨우 한 둬 평 뽑았을까
다음날 아침 마당에 내려가 보았더니
뽑힌 자리마다 송곳 같은 작은 싹들이
아우성을 치고 다시 돋아나고 있었다
차를 타고 강릉을 가다 창 밖을 보니
연도의 산들이 벌겋게 마르고 있었다
푸른 소나무 숲들이 불을 맞은 듯
수만 평씩 타 들어 가고 있었다
소나무혹벌레들이 잠식해 간다고 했다
1.5mm~2mm의 작은 벌레들이
온 산천을 홍수처럼 밀어 가고 있었다
약육강식(弱肉强食)
강한 자가 누구인가
힘은 몸뚱이의 크고 작음에 있지 않다
육척거구 씨름꾼 내 친구 한 놈은
젊은 날에 종기를 앓아 세상을 떴는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작은 균들과 힘을 겨루다
그들에게 넘어져 먹히고 만 것이다
천 년 묵은 아름드리 거목도
백수의 제왕 사자도
그들이 이 지상을 마지막 떠날 때는
저 여리고도 작은 생명체들에게 밟히어
저들의 먹이로 분배되고 마나니
신은 무슨 뜻으로
세상을 갖는 마지막 강자를
그렇게 작은 놈들로 세웠단 말인가.
'임보시집들 > 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냥 / 임보 (0) | 2008.01.15 |
---|---|
다 사랑일세 / 임보 (0) | 2008.01.14 |
교미 / 임보 (0) | 2008.01.12 |
머리카락 / 임보 (0) | 2008.01.11 |
비 / 임보 (0) | 2008.01.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