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사슴의 머리에 뿔은 왜 달았는가

교미 / 임보

운수재 2008. 1. 12. 12:00

 

 

교미(交尾) /   임보

 

 

벌들의 교미는 참 황홀하다

여왕벌이 춘정이 들면 하늘을 향해 치솟아 오르고

그 뒤를 수펄들이 다투어 좇는다

그중 날개와 허리 힘이 제일 좋은 한 놈이

드디어 여왕을 얻는다

혼신으로 여왕의 몸 속에 생명의 씨를 다 쏟고

탈진한 수펄은 지상으로 추락해 산화한다

그러나 한 번의 교미만으로 여왕은

평생 수십만 군의 새끼를 낳는다.

 

교미가 끝나는 숫버마제비는 무릎을 꿇고

암버마제비의 입 앞에 엎드린다

헌신의 의식이다

아내는 남편의 팔과 다리 심장과 허파

머리와 몸통을 차례로 잘라

그의 몸 속에 차곡차곡 담는다

수컷이 암컷의 체내에 그렇게 스며

새끼를 만드는 생명체도 있다.

 

사람들의 그것도 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한 여자가 한 남자를 보게 되면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천하장사 항우(項羽)도 한 여자의 치마폭에 눌리어

힘을 잃고 만다

남자들의 등에 짊겨진 저 무거운 짐들을 보라

한 여자를 본 대가로 그는 평생

온 세상을 그렇게 지고 끙끙대며 죽어 간다

도대체

교미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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