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겨울, 하늘소의 춤

복대동시 4

운수재 2008. 10. 18. 10:11

 

 

복대동시(福臺洞詩)·4 /     임보

 

 

복대동 1733번지

날라리벌집 같은 다세대 주택 아래층엔

다섯 가구가 세들어 사는데

 

1호방엔 낚시 바늘처럼 등이 굽은 80 노파가

종일 화투패로 신수나 떠보며 혼자 살고 있는데

 

2호방엔 아가씨가 사는 모양인데

이사온 지 몇 개월에 아직 얼굴도 모르는 것은

우리들의 출퇴근 시간이 서로 다르기 때문인데

 

3호방엔 젊은 남녀가 살고 있는데

남자는 새벽 일찍 트럭을 몰고 나가고

여자도 이른 아침부터 공장으로 떠나서

이들도 아직 제대로 본 적이 없는데

 

4호방은 그랜저 세단이 하나 사는데

차만 문밖에서 늘 지키고 있고

사람들은 통 볼 수가 없는데

빨랫줄에 빨간 빨래들이 펄럭인 걸 보면

젊은 여자도 아마 함께 끼여 사는가 본데

 

5호방엔 50 넘은 사내가 혼자 살고 있는데

홀애비 같기도 하고 유부남 같기도 한

목석같이 멋없는 놈이 자주 방도 비우고 지내는데

무엇하는 놈인지 통 할 수가 없다고

옆집의 여반장은 날 놓고 수군대는 모양인데

 

내가 터놓고 지내는 사람은 오직 1호방 노파

청소차가 올 때마다 내 방 쓰레기 날라다 주고

된장국 끓이면 놋대접에 퍼 오기도 하는데

그 노파에게 가끔 애기 손님이 찾아오는데

아파트에 사는 손자라고 하는데

 

2호방에도 더러 손님이 오는 모양인데

자정이 넘어 찾아온 손님들인데

다음날 아침이면 문간 밖에

빈 술병들이 그리도 많이 쌓인 걸 보면

고 여자도 아마 꽤 술꾼인가 본데

 

3호방엔 자주 단체 손님들이 밀려와

왁자지껄 고스톱을 치는데

밤을 새우며 법석을 떠는 바람에

잠들을 설치기도 하는데

 

4호방엔 손님도 없는데

1호방 노파가 쑥덕인 걸 보면

우렁각시가 사는 것도 같고

배뱅이 삼촌이 사는 것도 같은데

 

위층의 집주인은 아직 이사올 기미도 없는데

셋방살이 객들만 모여 서로 눈치보며 살아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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