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겨울, 하늘소의 춤

한강이여

운수재 2008. 11. 20. 12:47

 

 

 

한강이여/     임보

 

 

한강이여,

그대의 입술에 혀를 대면

멀리 남으로

태백(太白)의 어느 산기슭

자작나무 잎새에 서린

한 방울의 영롱한 이슬―

멀리 북으로

내금강(內金剛)의 그윽한 산골짝

너도밤나무의 맑은 뿌리 끝에 열린

한 방울의 감로수도

이렇게 황홀히 스며들어

나를 설레게 하는구나

 

한강이여,

그대의 심장에 귀를 기울이면

태평양의 바다 밑 깊은 지층을 타고

몇만 년을 흐르던 태고의 물줄기가

동해를 넘어오다 드디어

설악(雪岳)의 등뼈를 뚫고 솟아오른

한 줄기 용천수의 고동소리도 들리나니

혹은

시베리아로 오세아니아로

무변의 하늘을 몇천 년

바람 따라 떠돌던 태초의 성운(聖雲)이

오대산(五臺山) 봉우리에 잠시 머물다

천둥 번개로 쏟아져 내린

소나기의 그 함성도 메아리치는구나

 

한강이여,

그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면

위례성(慰禮城)으로

한양(漢陽)으로

서울로 흘러온

이 땅의 5천년

옹이 박힌 그대의 발바닥도 서럽구나

되놈들의 말굽소리

왜놈들의 조총소리

그리고 그 무덥던 6월의 포성

우리가 뿌린 선혈 한으로 남아

그대 머리 위에 붉은 노을로

그렇게 아직 타고 있구나

 

그러나 한강이여,

장하기도 하다

일만의 계곡과 일만의 들판에

억조창생 가득 싣고 천만 년 달려온

그대, 대지의 젖줄 생명의 끈이여

이제 드디어 그대의 보금자리 이 서울의 들판에

천년을 기다려 온 배달의 문화

온 세계가 눈길을 쏟을 민족의 꽃을 피우리니

내일 2000년의 아침엔

서울이 세계의 심장으로 고동치고

한강 바로 당신이

오대양 온 천하를 푸르게 푸르게 태우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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