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여/ 임보
한강이여,
그대의 입술에 혀를 대면
멀리 남으로
태백(太白)의 어느 산기슭
자작나무 잎새에 서린
한 방울의 영롱한 이슬―
멀리 북으로
내금강(內金剛)의 그윽한 산골짝
너도밤나무의 맑은 뿌리 끝에 열린
한 방울의 감로수도
이렇게 황홀히 스며들어
나를 설레게 하는구나
한강이여,
그대의 심장에 귀를 기울이면
태평양의 바다 밑 깊은 지층을 타고
몇만 년을 흐르던 태고의 물줄기가
동해를 넘어오다 드디어
설악(雪岳)의 등뼈를 뚫고 솟아오른
한 줄기 용천수의 고동소리도 들리나니
혹은
시베리아로 오세아니아로
무변의 하늘을 몇천 년
바람 따라 떠돌던 태초의 성운(聖雲)이
오대산(五臺山) 봉우리에 잠시 머물다
천둥 번개로 쏟아져 내린
소나기의 그 함성도 메아리치는구나
한강이여,
그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눈을 감으면
위례성(慰禮城)으로
한양(漢陽)으로
서울로 흘러온
이 땅의 5천년
옹이 박힌 그대의 발바닥도 서럽구나
되놈들의 말굽소리
왜놈들의 조총소리
그리고 그 무덥던 6월의 포성
우리가 뿌린 선혈 한으로 남아
그대 머리 위에 붉은 노을로
그렇게 아직 타고 있구나
그러나 한강이여,
장하기도 하다
일만의 계곡과 일만의 들판에
억조창생 가득 싣고 천만 년 달려온
그대, 대지의 젖줄 생명의 끈이여
이제 드디어 그대의 보금자리 이 서울의 들판에
천년을 기다려 온 배달의 문화
온 세계가 눈길을 쏟을 민족의 꽃을 피우리니
내일 2000년의 아침엔
서울이 세계의 심장으로 고동치고
한강 바로 당신이
오대양 온 천하를 푸르게 푸르게 태우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