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 임보
청명한 아침
휘파람 불며
그대를 두 팔에 안고 처음 산을 올랐을 때
그대는 몇 캐럿쯤의 눈부신 보석이거나
짙은 향기의 꽃다발이었다
해가 중천에 솟고
떡갈나무 잎새들도 더위에 지쳐
늘어지기 시작할 무렵
산중턱에서 그대는 어느덧
나의 젖은 등에 업혀 있었고
정오 산마루에 올랐을 땐
그대는 이미 한덩이 납처럼
빛깔도 냄새도 없었다
아, 그리고 힘이 다 빠진 오후
자작나무 가지 위에 그대를 묶어 끌며
산을 내려오게 되었을 때
그대는 드디어 다 뭉개진
한 뭉치 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