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딱따구리에게

운수재 2009. 8. 30. 05:53

 

 

 

 

딱따구리에게/                      임보

 

 

 

똑또르르르륵…… 똑또르르르륵……

 

숲을 걷다가 영롱한 음향에 귀가 선다

지상에서 가장 명징한 가락을 뽑아내는

타악기의 연주자는 딱따구리다

그의 단단한 부리가

마른 나무를 두드리는 저 소리

 

똑또르르르륵…… 똑또르르르륵……

 

집을 짓는 것도

먹이를 찾는 것도

그들에겐 다 즐거운 음악이다

굳은 부리로 1초에 15번을 두드린다는

저 신묘한 새의 신기(神技)도 신기지만,

한갓 마른 나무의 몸통이 그처럼 맑은

소리를 품고 있다니 놀라운 일이다.

 

똑또르르르륵…… 똑또르르르륵……

 

숲 사이로 쏟아져 내리는 햇살이 눈부시다.

 

똑또르르르륵…… 똑또르르르륵……

 

딱따구리여,

날카로운 네 부리로 이 머리통을 때려다오.

부질없는 망상의 이 골통을 찍어다오.

한 가닥 맑은 소리를 뽑아내 다오.

텅 빈 영혼의 악기를 만들어 다오.

 

똑또르르르륵…… 똑또르르르륵……

                                       (우리시 2009.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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