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아나크론

운수재 2009. 10. 2. 05:40

 

 

 

 

아나크론/                             임보

 

 

 

태평양을 횡단하는 아나크론이라는 철새가 있다

물고기를 사냥하며 살아가는 물새이지만

물속에 들어가질 못 한다

여느 물새들과는 달리 그의 깃털엔 기름기가 없어서

물에 젖으면 익사하고 만다

그러니 그는 긴 발톱만 가지고

물의 표면 가까이 헤엄쳐 가는 물고기를

날쌔게 낚아채야만 한다

잠시 물 위에 떠 쉬어 갈 수도 없는 아나크론!

참 불쌍한 새라고?

글쎄,

그래서 그는 가장 멀리 날 수 있는 날개를 지녔다

아니, 그런 능력을 지녔기 때문에

날개에 기름을 달 필요가 없었던가?

도대체 무엇이 앞선 것인가?

날개인가, 기름인가?

왜 둘이 아니라 하나인가?

 

 

 

 

 

'임보시집들 > 눈부신 귀향'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만해화  (0) 2009.10.15
간월암  (0) 2009.10.04
사슴의 뿔  (0) 2009.09.29
새들을 날개 위에 올려라  (0) 2009.09.27
홍어에 대한 한 보고  (0) 2009.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