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물의 세상

운수재 2009. 11. 27. 08:18

 

 

 

 

물의 세상/                            임보

 

 

 

남해 거문도쯤에서

한 40분만 바다로 달려나가 보면

이 세상은 뭍[陸]이 아니라

물[海]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상의 7할이 물로 뒤덮여 있고

바다의 깊이가 산들의 높이보다 더하니

우리 사는 이 세상은

지구(地球)가 아니라 수구(水球),

하나의 큰 물방울―푸른 수국(水國)이다.

거친 바다의 물결을 가르며

날듯이 헤엄쳐 가는 저 상어의 무리들을 보라

엔진도 프로펠러도 달지 않았지만

그들은 얼마나 눈부시게 비상하는가

물나라의 왕자들

그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다.

뭍에 붙어사는 생명들은 한갓 더부살이일 뿐

지상에 군림하는 간악한 인간들이여

그대들이 강자라고?

물속의 세상에선 단 몇 분도 맨몸으로 버티지 못하는

나약한 무리들일 뿐

너희는 이 세상을 더럽히고 파괴하는

불량배에 지나지 않을 뿐

이 세상의 주인은 비늘 번득이는 어족(魚族)들

이 세상의 황제는 수궁(水宮)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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