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세상/ 임보
남해 거문도쯤에서
한 40분만 바다로 달려나가 보면
이 세상은 뭍[陸]이 아니라
물[海]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지상의 7할이 물로 뒤덮여 있고
바다의 깊이가 산들의 높이보다 더하니
우리 사는 이 세상은
지구(地球)가 아니라 수구(水球),
하나의 큰 물방울―푸른 수국(水國)이다.
거친 바다의 물결을 가르며
날듯이 헤엄쳐 가는 저 상어의 무리들을 보라
엔진도 프로펠러도 달지 않았지만
그들은 얼마나 눈부시게 비상하는가
물나라의 왕자들
그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다.
뭍에 붙어사는 생명들은 한갓 더부살이일 뿐
지상에 군림하는 간악한 인간들이여
그대들이 강자라고?
물속의 세상에선 단 몇 분도 맨몸으로 버티지 못하는
나약한 무리들일 뿐
너희는 이 세상을 더럽히고 파괴하는
불량배에 지나지 않을 뿐
이 세상의 주인은 비늘 번득이는 어족(魚族)들
이 세상의 황제는 수궁(水宮)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