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도둑처럼

운수재 2009. 11. 23. 05:07

 

 

 

도둑처럼/                임보

 

 

 

딸깍

그대의 집 초인종을 누른다

소리도 없이 열리는 문(門)

그대는 없고 빈 방에

그대가 벗어 놓고 간 허물 같은 언어들만

남루하다

그대의 체온도

그대의 체취도

만질 수 없는

평면사각(平面四角)의 형광방

힐끔거리며 주위를 잠시 살핀다

<메모를 남겨 주세요>는

못 본 척

내 종적을 흘리지 않고

훌쩍 도둑처럼 담을 넘어

옆집의 문을 밀고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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