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눈부신 귀향

뚜쟁이 짓을 하지 말라

운수재 2010. 1. 2. 11:04

 

 

 

 

뚜쟁이 짓을 하지 말라             임보

 

 

 

사람들아,

큰 열매를 얻겠다고

벌들이 하는 일을 빼앗아

인공수분을 하지 말라

그러면 장차

꽃들은 향기와 고운 빛깔을

다 버리고 말 것이니

사람들은 삭막한 과수원에 매달리다

드디어 지쳐 쓰러지고 말리라

 

어리석은 사람들아,

부화를 더 많이 시키겠다고

연어의 배들을 갈라

인공수정을 시키지 말라

강바닥을 몸으로 헐어 새끼를 심는

암수의 그 즐거움을 앗아간다면

수 만리 해협을 유영하던 연어들이

어찌 모천을 찾아 다시 되돌아오겠는가?

 

어리석고 어리석은 사람들아,

사람의 몸에서 난자와 정자를 뽑아

수정관 속에서 결합시키지 말라

그렇게 되면 장차 신은 너희로부터

이성의 몸을 품는 따스한 즐거움을 앗아갈 것이니

누가 한 지어미의 지아비가 되고자 하며

누가 한 지아비의 지어미로 살려고 하겠는가

씨족의 마을들은 폐허가 되고

정겨운 가족들은 사라질 것이니

그때 사람들은 거친 황야를

외톨이로 쓸쓸히 떠돌리라

 

어리석고 어리석은 사람들아,

눈앞의 작은 이익에 눈이 먼 사람들아,

자연의 섭리를 어기고 뚜쟁이 짓을 하지 말라

생명들의 태어남은 그대들이 관여할 바가 아닌

하늘의 몫이거늘

어리석은 욕심으로 천리를 거스르지 말라

어느 날 문득 세상이 무너져

그대들을 덮치고

영원한 암흑 속에 이 지상을 묻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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