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작시

지상의 강자

운수재 2011. 2. 21. 18:57

 

 

 

지상의 강자/             임보

 

 

인간들이 이 지상을 지배하는 영장이라고 한다

몇 백 미터 높이의 거대한 빌딩을 세우고

댐을 만들어 강물을 가두기도 하고

육지를 뚫어 뱃길을 내기도 하고

바다를 막아 뭍을 만들기도 하고

모든 동물과 식물들을 통제하며 살아가니

인간들이 이 지상의 주인이라고 할만도 하다

 

그러나 배를 타고 망망대해에 나가 보라

물의 세상에서는 인간들이 얼마나 무력한가?

장비를 갖추지 않고는 단 몇 분도 버틸 수 없다

수면을 뚫고 바다를 가[耕]는 상어의 무리나

파도를 가르고 몸을 뒤채는 고래의 무리를 보라

물의 주인은 역시 푸른 지느러미의 어족들

그들이 광막한 수국(水國)의 지배자임을 알리라

 

지상이라고 해서 결코 만만한 것은 아니다

고비나 사하라 혹은 타클라마칸 사막에 가 보라

낙타가 없다면 전갈에 발꿈치를 물리고 말리라

아마존이나 베트남 혹은 자바의 밀림에 가 보라

악어나 아나콘다 같은 파충류에 몸서리를 치리라

아니, 인간들이 터잡아 살고 있는 이 문명의 땅도

사실 군림하는 것은 인간이 아닌 다른 생명체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수억만 군의 작은 바이러스들이

주변에 득실거리며 우리의 생명을 노리고 있다

몸속의 전사 백혈구들은 불철주야 이들과 싸운다

이들과의 전투에서 패배하면 곧 사망에 이른다

페스트가 사람의 마을을 황폐하게 하기도 하고

구제역이 소 돼지들의 가축을 몰살하기도 하고

조류독감이 닭 오리들을 휩쓸어 가기도 한다

 

인간들이 이 세상의 주인이라고?

천만의 말씀이다

바다의 고래도 지상의 코끼리도

사자도 인간도 마지막 넘어뜨린 것은 그들

무너진 육신을 말끔히 먹어치운 것도 그들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작은 미생물들이다

이들이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려운 강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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