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竹) 임 보
누에가 그 맑은 몸으로 은사의 가는 실을 뽑아내듯 대는 그 빈 몸으로 소리의 실을 뽑아낸다
그것을 못 믿겠거든 달이 밝은 밤 잠시 대밭에 나가 홀로 서 있어 보시라
아가의 손 같은 작은 댓잎들이 서로가 서로를 어루만지며 흰 달빛에 맑은 바람을 걸어 얼마나 신묘한 소리를 짜내는지
그래도 못 믿겠거든 저 단소나 대금의 가락을 들어보시라 대의 몸에서 풀려나온 영롱한 소리의 실에 그대의 귀가 깊이 묶이지 않던가?
대가 몸을 그렇게 비운 것은 한평생 자신의 빚은 소리의 실타래를 그 속에 담아 두기 위함이다
-임보 시인의 신간시집 <자운영꽃밭>에서 -
속 비우기, 귀 열기
김 금용 시인
임보 시인의 이번 신간시집《자운영꽃밭》은 작년에 우수시집으로 선정되기도 했던 <마누라 전성시대>와는 다소 상반되는 시집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를 50 여 년간 동거동락하며 살아온 마누라에 빗대어 유머러스하게, 능청스럽게, 그러나 아이러니를 접목하여 쓴 시집이라면, 《자운영꽃밭》시집은 우리네 빡빡한 아스팔트 문화권 너머, 소외된 생명체들에 대한 관심과 그 아웃사이더인 자연이 인간에게 던지는 화두를 돌이켜 보게 하는 시집이라 하겠다. 마주 앉아 몇 시간을 이야기 하고도 서로의 ‘내 안의 나’를 알 수 없는 현대인들의 높은 담장 밖에서, 오직 조경을 위해 존재하게 된 꽃과 나무가 오히려 우리의 상처를 치유하고 사랑의 울타리가 되어 준다는 걸 시인의 오랜 시력에서 터득한 높은 혜안과 시적 은유로 깨닫게 해준다 하겠다. 그 중 이 시 ‘대竹’는 ‘耳順’에 대한 자성을 보여준 시편으로, 독자로 하여금 대나무의 ‘속을 비운 그 뜻’과 ‘귀 열기’를 도와준다 하겠다.
대학시절 겨울방학 때, 쌍계사 국사암에서 며칠 묵은 적이 있었다. 서울에서만 이십 여 년을 살아온 나로서는 절 방 바로 앞에 빽빽이 서있는 대나무는 처음이어서 얼마나 인상적이었는지 모른다. 그러나 밤새 지나가는 얕은 바람에도 어찌나 잎새들끼리 부딪치며 징징거리던지, 잠을 이룰 수 없었다. 그 때까지 내가 아는 대나무에 대한 상식이란, 윤선도의 <오우가五友歌>에서 대나무는 “나무도 아닌 것이 풀도 아닌 것이/ 곱기는 뉘 시키며 속은 어찌 비었는가/ 저렇게 사시에 푸르니 그를 좋아 하노라” 정도였다. 즉, 한겨울에도 저리 푸를 수 있는 건 속을 비워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요즘이나 예전이나 정치인을 비롯하여 권위나 명예를 앞에 두고 혹은 돈을 앞에 두고 심지어 종교인들까지도 사재기의 유혹에 걸려 신문을 장식하는 마당에, 어찌 대나무를 닮을 수 있을까, 아서라...! 그렇게 理想鄕의 나무로만 받아들였었다. 그러므로 “ 바위 절벽에 뿌리내리는 소나무의 비정함도/ 피침형 잎새로 베어 날리는 / 나는 테러리스트 //”(함민복 시인의 ‘대나무)나 “칸칸이 방방이 더 시퍼런 불 켜들고 있는 구멍 때문이다” (최서림 시인의 ‘대나무’ )가 더 솔직한 대나무에 대한 감상이자 시심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이번 시 ‘대竹’를 읽으며 비로소 대나무의 속 비운 이유를 받아들이게 된다. “누에가 그 맑은 몸으로/ 은사의 가는 실을 뽑아내듯/ ” 대나무는 제 몸을 비워가며 소리의 실을 뽑아낸다는 것이다. 못 믿겠거든 달밤에 나가 혼자 가만히 서 있어 보면 안다고까지 했으니,.. 그래서 난 부랴부랴 강 건너 대나무 숲에 들어 바람이 불기를 기다렸다. 보름달 뜨는 날도 기다렸다. “흰 달빛 아래 맑은 바람을 걸어 신묘한 소리를 짜내는”지 상상의 나래를 피며 귀를 기울였다. 대금과 단소 가락에 취해 십 여 년 전, 졸시 한 편 지었던 절절함도 다시금 되새겨봤다. 그러고 보니, 대나무는 자명고처럼 자신의 몸을 비워 “한평생 자신의 빚은 소리의 실타래를/ 그 속에 담아” 두고 있음을 알겠다.
공자가 말씀하신 耳順을 다시금 새겨볼 만하다. 법 없이도 세상 이치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예순의 나이만을 공자(孔子)가 지칭한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천지만물(天地萬物)의 이치를 듣는 대로 모나지 않게 껴안고 혹은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는 데서 그 온전한 뜻이 있음을 터득한 시인은 그래서 귀를 열고 뭇 생명체와 소통하려고 애씀을 이번 여러 시편에서 볼 수 있다. 시‘시클라멘’의 마지막 행에서 “내 귀가 막혀 한마디도 들을 수 없다” 또 시 ’영춘화‘에서도 ”내 귀가 어두워 / 그들의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다“ 라고 한탄하는 걸 보면, 시인은 ’대竹‘에 이르러 ”속 비움“의 귀결을 이룬 게 아닐까, 감히 생각해본다. 숨이 넘어가는 순간까지 제일 늦게 닫힌다는 귀를 나도 열어보고 싶다. 생명의 울림을 담아내고 있는 대나무를 옛 선조들이나 시인들이 그토록 흠모해 온 이유를 이 시를 통해 겨우 알겠다.
<문학과 창작> 여름호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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