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에 관한 명상
임 보(시인)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물들이 다 그렇기는 하지만 ‘생명’처럼 신비로운 것은 없다.
우선 ‘나’라는 생명체를 놓고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하자.
나는 어디서 왔는가? 물론 부모로부터 왔다.
그러나 나의 근원은 부모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그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4분의 조부모, 8분의 증조부모, 16분의 고조부모… 한없이 거슬러 올라가면 태초의 창조주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 아닌가?
뿐만 아니라 나를 구성하는 선조들의 수효는 한 세대를 오를수록 배로 불어난다, 한 세대를 30년으로 잡고 60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20세대가 되니 2의 20승― 백만 명이 넘는다.
겨우 600년만 거슬러 올라가도 오늘의 나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고 있었던 조상들의 수효가 100만 명이 넘는다. 그러니 구원한 인류 역사를 생각하면 나의 혈관 속에는 과거 전 조상들의 피가 담겨 흐른다고 할 수 있다.
이젠 미래를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내가 배우자를 만나 두 자녀를 낳고, 그 자녀들이 또 결혼을 하여 두 자녀들을 낳고… 이렇게 해서 600년이 지나게 되면 내 피를 지닌 나의 후손들이 몇이나 불어나는가? 100만 명이 넘게 된다.
그런데 인류의 미래가 몇 만 년이 지속될지 누가 아는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내 피는 미래 인류들의 혈관 속에 스미고 스며 나는 미래 인류들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전 과거 조상들의 집합이면서, 전 미래 인류들이 비롯되는 시발점으로, 온 인류의 한중심이 된다.
이젠 우리의 육신을 한번 생각해 보도록 하자.
내가 지닌 이 육신은 원래 부모로부터 받은 것이지만 스스로 생명작용을 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나의 주변에 있는 수많은 것들을 섭취하면서 오늘의 이러한 육신을 갖게 된 것이다.
끊임없는 호흡작용을 통해 공기 속에 들어 있는 필요한 요소들을 취하고, 열심히 음식물을 섭취하여 필요한 영양소들을 끌어들이는 생명활동을 하고 있다. 밥이며 과일이며 생선이며 고기며 채소며… 우리의 식탁에는 끼니마다 얼마나 많은 식품들이 놓이는가? 이것들이 우리의 육신을 만들고 있다. 우리가 먹은 한 개의 사과 속에는 얼마나 광활한 세계성이 담겨 있는가? 내가 집은 한 개의 사과 속에는 그 사과의 전 조상들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과나무가 끌어들인 햇빛과 공기와 물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영양소들을 품고 있는 것이 아닌가? 우리 인간들은 이러한 식품들을 다양하게 섭취하면서 생명활동을 하고 있다. 그리하여 우리의 육체는 우리가 섭취한 식품들의 총체적인 세계성에 의해 형성된다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생명작용이 끝나고 죽음을 맞게 되면 우리의 육신은 어떻게 되는가? 그것이 왔었던 애초의 상태로 되돌아가게 된다. 공기 속으로, 물속으로, 흙속으로 환원하는 것이다. 그랬다가 어떤 것들은 초목의 뿌리를 통해 풀이나 나무 의 몸속으로 스며들 것이다. 그리고 어떤 것들은 동물이나 물고기의 육신으로 다시 자리를 옮길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우리의 육신도 하나의 교차점이다. 지상의 여러 요소들이 우리 육신 속에 잠시 모여 유기적인 생명활동을 하다가 다시 그것이 왔었던 애초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교차점이며 또한 중심점이 된다.
‘나’라는 생명체는 어떤 존재인가?
전 과거 조상들이 응집된 집합체며 전 미래 인류가 시작된 출발점으로 인류의 한중심이 된다.
‘나’라는 육신 역시 공간적인 한중심이 된다. 지상의 모든 생명체들이 내 육신을 구성하는 요소로 결집되었다가 내 생명작용이 끝나면 다시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하나의 교차점이 된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만 그런 소중한 존재가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는 다 그처럼 소중하게 창조되었다는 사실이다. 실로 신비롭고 경외로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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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 문화>창간호 2021년 여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