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선시] 지팽이 / 임보

운수재 2007. 2. 4. 09:57


지팽이 /  임보



산길을 가는데

머리를 쳐들고 혀를 낼름거리며

가는 길을 막는 놈이 있다

보아하니

한 자 남짓한 독사(毒蛇)다

짚고 있던 지팽이를 들어 허리를 쳤더니

두 동강이 나고 만다

그런데 이 어인 일인가

갈라진 몸뚱이가 두 놈으로 되살아나

식식거리며 달려드는 게 아닌가

달려드는 놈을 지팽이로 다시 치면

두 동강이 나고

갈라진 동강이는 저마다 머리를 달고

되살아나 달려드니

삽시에 길은 독사의 소굴이 되고 말았다

어찌하면 좋단 말인가

지팽이를 버릴 수도 휘두를 수도 없는

진퇴양난(進退兩難)이다

나무가지 위에서 지켜보고 있던

뱁새가 무어라고 야단스럽게 지저귀고 있다

아마 버리라는 시늉인 것 같다

지팽이를 들어 멀리 팽개쳤더니

우굴거리던 놈들이 지팽이를 쫓아가

그 속으로 다 기어들고 만다.





자연과 시의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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