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선시] 독 / 임보

운수재 2007. 2. 6. 11:21
 


  /   임보


무악(巫岳)이란 늙은이는

아침에

마당 동편에 놓여 있는 백 개의 독을

마당 서편으로 옮겨 놓고

오후엔

서편 마당의 독을 다시

동편 마당으로 옮겨 놓기를

날마다 되풀이하고 있다

이 무슨 쓸모없는 짓거린가고 물으니

내 하는 일은 무언가고 무악(巫岳)이 되묻는다.

글을 쓰는 일이라고 대답했더니

그 늙은이 웃으며 이르기를

말을 늘어 놓는 일이나 독을 늘어 놓는 일이

다를 게 무어냐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내가 평소 비웃었던 그 바둑쟁이들이

밤을 새며 바둑알을 열심히 나르는 그 놀음이나

내가 심지를 돋으며 밤 깊도록

말들을 날라다 시(詩)랍시고 얽어맨 일들이

다 그게 그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자연과 시의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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