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 / 임보
무악(巫岳)이란 늙은이는
아침에
마당 동편에 놓여 있는 백 개의 독을
마당 서편으로 옮겨 놓고
오후엔
서편 마당의 독을 다시
동편 마당으로 옮겨 놓기를
날마다 되풀이하고 있다
이 무슨 쓸모없는 짓거린가고 물으니
내 하는 일은 무언가고 무악(巫岳)이 되묻는다.
글을 쓰는 일이라고 대답했더니
그 늙은이 웃으며 이르기를
말을 늘어 놓는 일이나 독을 늘어 놓는 일이
다를 게 무어냐는 것이다
그 얘기를 듣고 보니
내가 평소 비웃었던 그 바둑쟁이들이
밤을 새며 바둑알을 열심히 나르는 그 놀음이나
내가 심지를 돋으며 밤 깊도록
말들을 날라다 시(詩)랍시고 얽어맨 일들이
다 그게 그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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