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 / 임보
표(瓢)라는 자는
푸른 눈썹이 3치쯤 돋아 있다
늘 큰 박통을 등에 지고 다니는데
천년 묵은 고목의 죽은 가지들도
그의 손이 가 닿기만 하면
싹이 다시 돋아난다
그가 지나는 곳의 풀들은
그의 장대 키가 묻히도록 무성히 솟아오르고
온갖 백과(百果)들도 다투어
그 맛과 곱기를 자랑하며 흐드러지게 열리는데
누가 무슨 연고인가 묻자
마른 나무 뿌리를 좇아
한 천년쯤 물을 나르다 보니
그놈들도 물바가지를 알아 보는가 보다고 한다
어떤 자의 말로는
표(瓢)는 나무의 말을 알아듣는 귀를 달고 다닌다는데
그가 혼자 숲속을 거닐 때
주위의 나뭇가지들이 그를 향해 어우러지는 것을 보면
과연 고개를 끄덕일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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