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선시] 귀 / 임보

운수재 2007. 2. 17. 09:39

 

   /   임보

 

 

표(瓢)라는 자는

 

푸른 눈썹이 3치쯤 돋아 있다

 

늘 큰 박통을 등에 지고 다니는데

 

천년 묵은 고목의 죽은 가지들도

 

그의 손이 가 닿기만 하면

 

싹이 다시 돋아난다

 

그가 지나는 곳의 풀들은

 

그의 장대 키가 묻히도록 무성히 솟아오르고

 

온갖 백과(百果)들도 다투어

 

그 맛과 곱기를 자랑하며 흐드러지게 열리는데

 

누가 무슨 연고인가 묻자

 

마른 나무 뿌리를 좇아

 

한 천년쯤 물을 나르다 보니

 

그놈들도 물바가지를 알아 보는가 보다고 한다

 

어떤 자의 말로는

 

표(瓢)는 나무의 말을 알아듣는 귀를 달고 다닌다는데

 

그가 혼자 숲속을 거닐 때

 

주위의 나뭇가지들이 그를 향해 어우러지는 것을 보면

 

과연 고개를 끄덕일 만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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