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경동(石鏡洞) / 임보
백하(白河)의 사공에게 석경동을 물으니
짚고 있던 지팡이 끝을 내밀며
잡고 따르라고 한다.
잔잔한 백하의 강 언덕을 거슬러
한나절쯤 올랐을까
문득 천지가 은빛이더니
하늘을 찌르는 수정 절벽들이
코 앞을 가로 막는다.
전생(前生)의 형상이 돌거울에 내비친다는
석경동(石鏡洞)이 아닌가.
허나 아무리 기웃거려도
내 형상이 드러나뵈지 않아 어리둥절했더니
사공이 이르기를
이승에 아직 뿌리를 둔 자는
눈이 흐려 그 맑음에 닿을 수 없다고 한다.
사공은 그의 스승을 뵙고 며칠 쉬었다 오겠다며
자운동(紫雲洞) 굴 안으로 사라지고
나는 다시 왔던 길을 되밟아
홀로 백하(白河)의 나루터로 내려가는데
오던 때 한나절 길이
이레 밤낮을 걸어도 끝날 줄을 모른다.
다 지쳐빠진 몰골로 드디어 나루에 이르자
먼저 온 사공이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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