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선시] 석경동 / 임보

운수재 2007. 3. 7. 12:07

 


석경동(石鏡洞)  /   임보



백하(白河)의 사공에게 석경동을 물으니

짚고 있던 지팡이 끝을 내밀며

잡고 따르라고 한다.

잔잔한 백하의 강 언덕을 거슬러

한나절쯤 올랐을까

문득 천지가 은빛이더니

하늘을 찌르는 수정 절벽들이

코 앞을 가로 막는다.

전생(前生)의 형상이 돌거울에 내비친다는

석경동(石鏡洞)이 아닌가.

허나 아무리 기웃거려도

내 형상이 드러나뵈지 않아 어리둥절했더니

사공이 이르기를

이승에 아직 뿌리를 둔 자는

눈이 흐려 그 맑음에 닿을 수 없다고 한다.

사공은 그의 스승을 뵙고 며칠 쉬었다 오겠다며

자운동(紫雲洞) 굴 안으로 사라지고

나는 다시 왔던 길을 되밟아

홀로 백하(白河)의 나루터로 내려가는데

오던 때 한나절 길이

이레 밤낮을 걸어도 끝날 줄을 모른다.

다 지쳐빠진 몰골로 드디어 나루에 이르자

먼저 온 사공이 웃고 있다.

 

 






자연과 시의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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