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금(雲琴) / 임보
방이放耳라는 곳에 이르니
산천의 초목이 다 북北으로 굽어 있다
해는 남南에 있고
바람 또한 북으로 흐르지 않는데
어인 일로 초목들의 가지가 다
북으로 기운단 말인가
아니, 초목들만이 아니라 가만히 보니
산봉우리들도 북으로 기울어 있다
아니,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슴도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데 그쪽이다
이상도 하구나, 거기 무엇이 있어
세상이 다 한쪽으로 기운단 말인가
개울가에서 나물을 씻고 있는
노파의 고개도 또한 그렇다
발을 멈추고 그 늙은이에게 사연을 물었으나
웃으며 말이 없다
다시 거듭 묻자
이 노인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 귀를 잡아 북쪽으로 밀며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한다
소리라니 무슨 바람소리란 말인가
눈을 멀뚱이고만 있는 나를 보고
노파 안타깝다는 듯 내 발등을
힘껏 재겨 밟는다
아, 그러자
막힌 물꼬가 트이듯
내 귀가 열리면서 소리가 스며드는데
이 무슨 신묘한 음색인가
귀를 타고 들어온 소리는 사향처럼
온몸의 피와 뼈 속에 녹아 울렁거린다
운소韻巢라는 자가 산 너머 북쪽 마을에서
운금雲琴을 뜯고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그 소리에 사로잡혀
땅 바닥에 주저앉아 귀를 세우고 있는데
어디선가
바위에 정을 때려치는 쇳소리와 함께
벽력같은 음성이 들렸다
“소리에 매이지 말라!”
백발의 한 노인이
큰 바위 위에 주장자朱杖子를 꽂은 채 서 있다
그러자 운금雲琴의 가락도 멎고
산과 나무와 짐승들의 고개도
다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