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선시] 운금

운수재 2007. 4. 5. 09:12
 

운금(雲琴)   /   임보 


방이放耳는 곳에 이르니

산천의 초목이 다 북으로 굽어 있다

해는 남에 있고

바람 또한 북으로 흐르지 않는데

어인 일로 초목들의 가지가 다

북으로 기운단 말인가

아니, 초목들만이 아니라 가만히 보니

산봉우리들도 북으로 기울어 있다

아니, 길가에 우두커니 서 있는 사슴도

고개를 기울이고 있는데 그쪽이다

이상도 하구나, 거기 무엇이 있어

세상이 다 한쪽으로 기운단 말인가

개울가에서 나물을 씻고 있는

노파의 고개도 또한 그렇다

발을 멈추고 그 늙은이에게 사연을 물었으나

웃으며 말이 없다

다시 거듭 묻자

이 노인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내 귀를 잡아 북쪽으로 밀며

소리가 들리지 않느냐고 한다

소리라니 무슨 바람소리란 말인가

눈을 멀뚱이고만 있는 나를 보고

노파 안타깝다는 듯 내 발등을

힘껏 재겨 밟는다

아, 그러자

막힌 물꼬가 트이듯

내 귀가 열리면서 소리가 스며드는데

이 무슨 신묘한 음색인가

귀를 타고 들어온 소리는 사향처럼

온몸의 피와 뼈 속에 녹아 울렁거린다

운소韻巢라는 자가 산 너머 북쪽 마을에서

운금雲琴을 뜯고 있다는 것이다

한동안 그 소리에 사로잡혀

땅 바닥에 주저앉아 귀를 세우고 있는데

어디선가

바위에 정을 때려치는 쇳소리와 함께

벽력같은 음성이 들렸다

 “소리에 매이지 말라!”

백발의 한 노인이

큰 바위 위에 주장자朱杖子를 꽂은 채 서 있다

그러자 운금雲琴의 가락도 멎고

산과 나무와 짐승들의 고개도

다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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