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鐘) / 임보
산길을 가다 도우(道友)라는 여인을 만났다
방장사(方丈舍)라는 절에서 십여 년 수행을 하다
싱거워 그만 떠나는 길이라고 한다
보아하니 땡추다
심심하던 터라 이야기 이야기하며
함께 길을 간다
새를 만나면 새 얘기
나무를 만나면 나무 얘기
바람과 구름
달과 별들의 얘기도
이제는 다 동이 났다
개울에 이르러 물을 마시려는데
어디선가
작은 은종(銀鐘)의 울림이 코를 간지린다
소리 나는 곳을 두리번거렸더니
도우(道友) 웃으며
그녀의 배꼽 밑을 살며시 열어
물 속에 드리워 보인다
두 다리 사이에 매달린 예쁜 은백의 종이
물 그림자 속에서 울고 있다
두 손으로 와락 물을 움켜쥐었더니
도우(道友) 힘없이 물 위에 주저앉는다
그러자
개울에 잠겼던 산도 구름도 다
산산 조각이 나고
내 피는 종의 소리로
가득 끓었다
옷이 마르기를 기다려 다시 길에 서는데
도우(道友)는 오던 길을 되짚어 방장사로 향하고
나는 해를 따라 서쪽으로 걷는다
이제 보니
도우는 땡추가 아니라 보살이다.

자연과 시의 이웃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