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선시] 종

운수재 2007. 3. 31. 10:58

 

 


종(鐘)  /    임보



산길을 가다 도우(道友)라는 여인을 만났다

방장사(方丈舍)라는 절에서 십여 년 수행을 하다

싱거워 그만 떠나는 길이라고 한다

보아하니 땡추다

심심하던 터라 이야기 이야기하며

함께 길을 간다

새를 만나면 새 얘기

나무를 만나면 나무 얘기

바람과 구름

달과 별들의 얘기도

이제는 다 동이 났다

개울에 이르러 물을 마시려는데

어디선가

작은 은종(銀鐘)의 울림이 코를 간지린다

소리 나는 곳을 두리번거렸더니

도우(道友) 웃으며

그녀의 배꼽 밑을 살며시 열어

물 속에 드리워 보인다

두 다리 사이에 매달린 예쁜 은백의 종이

물 그림자 속에서 울고 있다

두 손으로 와락 물을 움켜쥐었더니

도우(道友) 힘없이 물 위에 주저앉는다

그러자

개울에 잠겼던 산도 구름도 다

산산 조각이 나고

내 피는 종의 소리로

가득 끓었다

옷이 마르기를 기다려 다시 길에 서는데

도우(道友)는 오던 길을 되짚어 방장사로 향하고

나는 해를 따라 서쪽으로 걷는다

이제 보니

도우는 땡추가 아니라 보살이다.

 

 






자연과 시의 이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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