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보시집들/구름 위의 다락마을

[선시] 전

운수재 2007. 4. 4. 12:53

 

 

전(犭田)   /   임보 


전이라는 짐승은 선하기 이를 데 없다

사나운 뿔도 날카로운 이빨도 없다

작은 몸통에 짧은 다리

체구도 볼 품 없는 느림보다

다만 털과 눈매가 곱다

어떤 맹수가 달려들면

몸을 공손히 도사린다

먹으면 먹히고

그냥 두면 다시 간다

그런데 만일 어떤 놈이 그를 삼키면

그의 뱃속에 들어가 알을 낳는다

며칠이 지나 그 알들이 깨이면

전의 새끼들은 그 맹수의 등을 뚫고 세상에 나온다

그렇게 그는 천의 몸뚱이로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영리한 표범은 전을 멀리서 보기만 해도

무서워 줄행랑을 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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