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犭田) / 임보
전이라는 짐승은 선하기 이를 데 없다
사나운 뿔도 날카로운 이빨도 없다
작은 몸통에 짧은 다리
체구도 볼 품 없는 느림보다
다만 털과 눈매가 곱다
어떤 맹수가 달려들면
몸을 공손히 도사린다
먹으면 먹히고
그냥 두면 다시 간다
그런데 만일 어떤 놈이 그를 삼키면
그의 뱃속에 들어가 알을 낳는다
며칠이 지나 그 알들이 깨이면
전의 새끼들은 그 맹수의 등을 뚫고 세상에 나온다
그렇게 그는 천의 몸뚱이로 다시 살아난다
그래서 영리한 표범은 전을 멀리서 보기만 해도
무서워 줄행랑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