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시감상]
김시습의 호방한 시정 / 임보
―「大言」과 「快意行」을 중심으로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은 세종과 성종 년간에 살았던 시인이다. 태어난 지 8개월 만에 글자를 알아차리고, 세 살이 되어서부터는 시를 짓기 시작하였다고 하니 타고난 그의 재주를 짐작할 만하다. 다섯 살에 어전에 불려가 시를 지었는데 이를 본 세종이 매우 기뻐하며 장차 크게 쓸 것이니 잘 기르라 당부했다.
그러나 김시습은 과거에는 별로 마음이 없었든지 산속에 들어가 학문을 익히기만 했다. 그가 21세 되던 해 삼각산 중흥사에 들어가 책을 읽던 중, 세조 찬탈의 정변 소식을 접하고 서책을 다 불사르고 만다. 의(義)가 무너지고 만 세상에서의 학문의 의의를 느끼지 못했던 것 같다. 그는 삭발을 하고 미친 중의 행색으로 운수행각(雲水行脚)의 길에 오른다.
관서로부터 출발해서 관동, 호서, 호남을 거쳐 영남의 계림에 이르기까지 명산대천을 누비며 시로써 울적한 마음을 달랜다. 그가 남긴 2천여 수의 시들은 그런 과정에서 얻어진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의 작품 속에는 세상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과 울분이 담겨 있다. 그는 길을 가다가도 못마땅한 벼슬아치를 만나면 조롱하기를 주저하지 않았으므로 관직의 무리들은 그와 상면키를 꺼려했다.
그가 얼마나 호방한 기질의 시인이었던가는 다음의 작품만 보아도 알 수 있다.
푸른 바다에 낚싯대 던져 큰 자라를 낚고
하늘 땅 해와 달을 손 안에 감추었노라.
하늘 밖 구름 위로 나는 따오길 지휘하고
세상 뒤덮던 산동의 호걸들을 손바닥에 움켰었노라.
삼천 진토 부처 세계의 끝까지 가 보고
성난 고래의 만리 물결도 내 다 삼켰노라.
팔백 고을 가운데 겨우 한 터럭.
인간 세상 좁은 걸 알고는 돌아와서 크게 웃었네.
―「큰 소리」(허경진 역)
碧海投竿釣巨鼈 乾坤日月手中鞱 指揮天外凌雲鵠 掌摑山東蓋世豪
拶盡三千塵佛界 呑窮萬里怒鯨濤 歸來浪笑人寰窄 八百中州只一毛 ―「大言」
「큰소리(大言)」란 제목의 글인데 세상을 향해 우렁차게 내뱉는 그의 목소리가 지금도 귀에 쟁쟁히 울리는 것만 같다.
그가 낚아 올리려는 것은 옅은 강물에 사는 자잘한 물고기가 아니라, 대양의 깊은 심해에서 천년을 산다고 하는 진귀한 자라다. 그는 지상의 세속적인 하찮은 것들에는 관심이 없다. 그래서 천지와 일월을 장악하고 천공을 높이 나는 큰 새들과 노닌다. 천하를 호령하던 역사적인 영웅호걸들도 그의 앞에서는 별것이 아니다. 그는 이승의 풍진세상뿐만 아니라 저승의 정토불국까지도 이미 꿰뚫어 보고 있다. 지상뿐만 아니라 고래가 사는 만리의 물길도 이미 다 터득했다. 천고의 역사를 살펴보고 무한한 우주의 세계를 통찰해 보니 우리가 발붙여 사는 이곳이 얼마나 작고 초라한 줄 알겠더라. 넓은 대지 위에 겨우 터럭 한 개에 지나지 않은 격이니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라고 큰소리치고 있다.
세상을 바라다보는 넓은 시야며 웅대한 시상이 놀랍기만 하다. 이러한 호탕한 시상은 다음의 「쾌의행(快意行 )」에서도 만날 수 있다.
나에게 이름난 병주의 칼이 있으니
이 칼로 넓은 바다의 물을 자르리라.
손으로 여룡의 굴을 더듬고
풍랑 속에서 여의주를 다투리니,
큰 물결이 넓은 하늘에 치솟아오르고
번개와 무지개가 번쩍 일어나리라.
수염을 휘어잡고 그 턱을 움켜잡아
거뜬히 빼앗은 뒤에라야 내 마음 기쁘리라.
―「마음껏 하고 싶어라」(허경진 역)
我有幷州刀 剪取滄溟水 手探驪龍窟 爭珠風浪裏
巨浸凌大空 雷霓騰閃起 將鬚摑其頷 健奪然後喜 ―「快意行 四首」3
내게는 중국의 병주 고을에서 만든 보검이 한 자루 있다. 그 칼로 대양의 거센 물결을 자르고 바다 속에 잠입하여 흑룡이 살고 있는 굴을 더듬어 들어갈 것이다. 그리하여 여의주를 놓고 거대한 흑룡과 한판 붙으리라. 그러면 사나운 파도는 하늘 높이 치솟아 오를 것이고 공중에는 무지개와 같은 번갯불의 섬광이 번쩍일 것이다. 나는 용의 수염을 휘어잡고 그 턱밑에 감춰진 여의주를 앗아 오리니 이 얼마나 장쾌한 일일까 보냐.
상상의 세계에 존재하는 용과 여의주의 얘기다. 용의 턱밑에 있다는 여의주를 얻게 되면 이루지 못할 일이 없다는 설화가 있다. 매월당은 현실의 부조리를 바로잡고 의(義)가 실현되는 정의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꿈은 실현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는 한평생 방랑의 길 위에서 헤매고 다녔다. 이 작품은 이룰 수 없는 그의 꿈에 대한 한을 노래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한을 풀어내는 얘기들은 『금오신화(金鰲新話)』를 통해서도 실현된다. 금오신화는 매월당이 서른에 이르렀을 때 잠시 방랑의 길을 멈추고 경주의 금오산 용장사에 들어 6년 동안 칩거해 지내면서 쓴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이다. 지금까지 전해진 것은 「만복사저포기(萬福寺摴蒲記)」「이생규장전(李生窺墻傳)」「취유부벽정기(醉遊浮碧亭記)」「남염부주지(南炎浮洲志)」「용궁부연록(龍宮赴宴錄)」등 5편이다.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비현실적인 시공(時空)을 배경으로 전개된다. 한(恨)의 사랑이 이승과 저승의 한계를 무너뜨리면서 성취되기도 하고, 천년의 시간을 거슬러 망국(亡國)의 한에 대한 회포를 풀기도 한다. 천상의 염라왕을 상대하여 생사(生死)와 천리에 관한 담론을 펼치기도 하고, 수궁(水宮)의 용왕을 만나 일장춘몽의 화려한 삶을 체험하기도 한다. 현실 속에서 이루지 못한 한을 다른 세상에서 실현하여 해원(解寃)하는 이야기들이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고 살아가는 지상적 삶의 한계성을 극복하려는 욕망의 기록이기도 하다.
매월당은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서 한평생 의로운 기상을 잃지 않고 살았던 선비다. 유불(儒彿)에 얽매이지 않고 넘나들었던 불기인(不羈人)이었으며, 세상과 궁합이 맞지 않은 방외인(方外人)이었다. 그래서 세상에서는 그를 광인(狂人) 기인(奇人)으로 폄하했지만 그는 조선조에 가장 우뚝 선 불멸의 시인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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