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명시 감상

정약용의 <애절양>

운수재 2007. 5. 16. 11:31

[명시감상]

 

다산 정약용의 「애절양(哀絶陽)」/  임보

 

 

실학의 거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소위 ‘일표이서(一表二書)’라고 일컫는『경세유표(經世遺表)』『흠흠신서(欽欽新書)』『목민심서(牧民心書)』등 많은 명저를 남긴 학자다. 한편 그의 문집인 『여유당전서(與猶堂全書)』에는 2,500여 수의 시가 실려 있는데, 이는 다산이 또한 대단한 시인이기도 했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한다.

다산의 시세계 역시 그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의 사상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서민들의 곤궁한 삶과 부조리한 현실을 적나라하게 고발하는 사실적인 작품이 많다. 여기에 소개하는 「애절양」은 다산이 강진에 귀양가 있던 시절에 지은 것으로 다음과 같은 주(註)가 달려 있다.

 

이 시는 가경(嘉慶) 계해년(1803년) 가을, 내가 강진에 있을 때 지었다. 갈밭에 사는 한 백성이 아이를 낳은 지 사흘 만에 군적에 등록되고, 이정이 소를 빼앗아 갔다. 그 백성이 칼을 뽑아 자기의 생식기를 스스로 베면서, “내가 이것 때문에 곤액을 당했다”고 말했다. 그 아내가 생식기를 가지고 관가에 가니, 그때까지 피가 뚝뚝 떨어졌다. 아내가 울며 호소했지만 문지기가 막아버렸다. 내가 듣고서 이 시를 지었다.

―『목민심서』권8「첨정」

 

蘆田少婦哭聲長 哭向縣門號穹蒼 夫征不復尙可有 自古未聞男絶陽

舅喪已縞兒未燥 三代名簽在軍保 薄言往愬虎守閽 里正咆哮牛去皁

磨刀入房血滿席 自恨生兒遭窘厄 蠶室淫刑豈有辜 閩囝去勢良亦慽

生生之理天所予 乾道成男坤道女 騙馬豶豕猶云悲 況乃生民思繼序

豪家終歲奏管絃 粒米寸帛無所捐 均吾赤子何厚薄 客窓重誦鳲鳩篇

 

노전 마을 젊은 아낙 울음소리 그치지 않네.

관아 향해 울다가 하늘 보고 울부짖누나.

남정네 전장에 나가 못 오는 일 있다지만

남자 성기 잘랐단 말 자고로 못 들었네.

시아비 상(喪) 벗고 태어난 아인 엊그젠데

삼대의 이름이 군보(軍保)에 올라 있다네.

달려가 호소해도 범 같은 문지기 가로막고

이정은 호통 치며 외양간 소까지 몰아가네.

아이 낳은 죄라고 남편이 한탄하며

칼 갈아 방에 들더니 선혈이 낭자해라.

잠실의 궁형도 지나친 형벌이요

민(閩) 땅의 자식 거세함도 애절한 일 아니던가.

자식 낳고 사는 건 하늘이 주신 이치여서

하늘 닮은 아들 나고 땅 닮은 딸 나거든

말 돼지 거세하는 것도 가엾다 이르는데

하물며 뒤를 이을 사람에 있어서야….

귀족들은 한평생 풍악이나 즐기면서

쌀 한 톨 베 한 치 바치는 일 없거늘

다 같은 백성인데 왜 이리 차별일까.

객창에서 거듭 거듭 ‘시구편’을 읊조리네.

 

당시의 군정(軍政)이 얼마나 문란했던가 이 시를 보면 짐작이 간다. 규정된 병역은 양민 남자 16세로부터 60세까지인데, 정군(正軍)이 아닌 자는 군보(軍保)라 하여 세금을 내도록 했다. 세금으로 베 곧 군포(軍布)를 징수했는데 문란한 군정(軍政)과 과중한 과세로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다. 죽은 사람 몫까지 세금을 거둬들이는 ‘백골징포(白骨徵布)’니, 갓난아이까지 병적에 올려 세금을 징수하는 ‘황구첨정(黃口僉丁)’이니 하는 말들이 떠돌았다. 시 「애절양」은 바로 이러한 가렴주구(苛斂誅求)를 고발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노전 마을의 젊은 아낙네가 관청에 달려가서 울부짖는다. “남자가 전쟁터에 나가 못 돌아온 일은 있다 해도 스스로 자신의 성기를 잘랐다는 말은 못 들었네. 시아비는 죽어서 이미 상을 벗었고, 아이는 갓 태어나 아직 탯물도 마르기 전인데, 삼대를 군보에 올려 세금을 내라니 어이된 일이란 말인가? 관아에 달려가 호소하려 해도 범 같은 문지기가 가로막아 들어갈 수 없고, 세리는 오히려 호통 치며 밀린 세금 대신 외양간의 소까지 몰아갔네. 그러자 아이 낳은 죄라고 한탄하며 남편은 칼을 갈아 방에 들어가더니 자신의 생식기를 자르고 말았다네.” 라고 통곡을 한다.

옛날에 남자의 생식기를 자르는 궁형이 잠실에서 행해지는 일이 있었고, 또한 고대 중국 민(閩)이란 고장에서는 종으로 삼기 위해 자식을 거세하는 일이 있었다지만 이 얼마나 애절한 일이던가. 자식 나아 기르는 것은 하늘이 주신 이치여서 천지를 닮은 아들과 딸 생겨나지 않던가? 말 돼지 거세하는 것도 가엾다 하거늘 하물며 세대를 이을 사람에 있어서야 더 말해 무얼 하겠는가. 양반들은 한평생 풍악이나 즐기면서 제대로 세금 한 푼 내지 않고도 잘 사는데 다 같은 백성으로 이 얼마나 불공평한 일이란 말인가? 시인은 객창에서 시경의 ‘시구편’(왕이 백성을 고루 사랑해야 한다는 뜻을 뻐꾸기에 비유해서 노래한 시)을 거듭 읊조리기만 한다.

 

당시의 세태는 이어지는 당쟁과 세도정치로 국가의 통치력이 약화되면서 삼정(三政)(田政,軍政,還穀)의 문란으로 백성들이 도탄에 빠져 있었다. 양반과 관리들의 횡포로 만신창이가 된 서민들은 그 고통을 참지 못하고 장차 민란으로 폭발하게 된다.

단산의 실학사상은 이러한 시대적 갈등과 모순을 해결하고자 했던 현실적인 학문이다. 그의 시 또한 그의 이러한 사상에서 빚어진 것이므로 비참한 현실을 사실적으로 고발했던 것이리라.

 

오늘날에도 억울함을 세상에 호소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불태우는 사람들도 적지 않으니 세상의 불공평함은 예나 이제나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아니, ‘애절양’을 넘어 ‘소신(燒身)’에 이르고 있으니 현실이 더욱 참담해진 것인지, 저항이 더욱 격렬해진 것인지 모를 일이다.

 

'고전명시 감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천석의 <의고(擬古)> / 임보  (0) 2007.06.23
정몽주의 <정부원>  (0) 2007.05.17
퇴계의 <청평산을 지나며>  (0) 2007.05.14
김시습의 호방한 시정  (0) 2007.05.13
허균의 <우는 연못>  (0) 2007.05.12